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넷째)이 지난 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0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발표문을 읽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배석했다. 공동취재사진
한달 전 ‘다음주의 질문’에 <한겨레>의 기후변화팀 신설을 소개하면서 ‘
한국판 뉴딜에 왜 그린이 빠져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며칠 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환경·산업·중기·국토 4개 부처에 그린 뉴딜 보고를 지시했다. 이후 한국판 뉴딜은 기존 디지털 뉴딜에 그린 뉴딜, 휴먼 뉴딜을 포함하게 됐다. 이번주 그 첫 결과물이 나왔다. 2년간 12조9천억원을 투입해 13만3천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어린이집·보건소 등 공공시설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산업단지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한다는 식이다. 아쉽게도 그린 뉴딜의 핵심이라 할 온실가스 감축이나 에너지 전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뭔가 녹색스러운, 고용 창출에 용이한 사업들만 나열돼 있다는 느낌이다. 일찌감치 그린 뉴딜의 필요성을 역설해온 이들은 한목소리로 아쉬움을 털어놨다. “이건 그린 뉴딜이 아니다”,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뭐가 다른가”.
주변에 최근에야 기후위기에 관심이 생겼다는 이들이 있다. 의외로 이런 이가 적지 않다. 일련의 세계적 흐름이 영향을 줬으리라 생각한다. ‘뉴노멀’을 불러온 코로나19와, 그에 앞서 장장 6개월이나 이어진 오스트레일리아 산불, 유럽연합의 그린 딜과 미국 하원의 그린 뉴딜 결의안,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 된 그레타 툰베리 등. 이 모든 시작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그 유명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 당시만 해도 권고 수준이었던 지구 기온 상승 제한폭 1.5도가 확정적으로 굳어진 게 바로 이 보고서 때문이다. 지구 온도는 대략 150년 전인 산업화 이전에 견줘 이미 1도가량 올랐고, 여기서 0.5도 더 오르면 파국이 온다는 뜻이다. 한국인들에겐 잊을 수 없는 폭염의 2018년, 그해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48차 아이피시시 총회에서 보고서는 채택됐다.
200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아이피시시의 과학자들은 보고서 채택 때마다 수백명이 대형 화면에 문서를 띄워놓고 문장 하나씩을 축조 심의한다. 5개 장 562쪽으로 구성된 ‘1.5도 보고서’도 그렇게 인천 송도에서 새벽에 탄생했다. 일일이 과학적 신뢰 수준을 표기한 보고서의 문장들은 준엄하다.
“인간 활동은 0.8도에서 1.2도 범위로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약 1도의 지구온난화를 유발한 것으로 추정된다(가능성 높음). 지구온난화가 현재 속도로 지속된다면 2030년에서 2052년 사이에 1.5도 상승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높은 신뢰도).”
빠르면 10년 뒤에 일어날 일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가 모두 살아 있는 동안일 가능성이 크다.
“1.5도 이상의 지구온난화로 인한 악영향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 중에는 사회적 소외계층과 취약계층, 일부 토착민, 그리고 농업이나 어업에 생계를 의존하는 지역 공동체가 포함된다(높은 신뢰도). 빈곤층과 사회적 소외계층은 지구온난화가 심화할수록 일부 인구 집단에서 증가할 전망이다(중간 신뢰도).”
기후위기는 결국 불평등하게 찾아온다. 기후변화로 찾아올 폭염과 태풍, 연안 범람 같은 자연재해와 대규모 난민, 식량 위기,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빈곤층이 먼저 체감한다. 그나마 “지구온난화를 1.5도로 억제하면 기후 위험에 노출되고 빈곤에 취약해질 인구의 수를 2050년까지 최대 수억명 줄일 수 있다(중간 신뢰도).”
“지구온난화를 1.5도로 억제하려면 에너지와 토지, 도시 및 기반시설, 산업 시스템에서의 빠르고 광범위한 전환이 필요하다(높은 신뢰도). 이러한 체제 전환은 속도 측면에서는 전례가 없지 않으나, 규모 측면에서는 전례가 없다. 이는 모든 부문에서 온실가스의 대폭 감축, 광범위한 감축 수단의 동원, 그리고 감축 수단에 대한 상당한 투자 증대가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중간 신뢰도).”
‘속도 측면에서의 전례’는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시동원체제를 이른다. 전쟁 때만큼 사회경제체제를 빠르게 전환해야 온난화를 1.5도 이내에서 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 그 전환은, 위기에 먼저 노출될 취약층을 보듬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그린 뉴딜에,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준수하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불평등 해소 방안이 포함돼야 하는 너무나 당연한 이유를 이 보고서의 문장들이 역설한다. 기상청 기후정보포털 누리집에 국문 번역을 병기한 국영문 합본 보고서(정책결정자를 위한 요약본)가 올라와 있으니 정책결정자들은 영어 학습용으로 활용해도 좋겠다.
박기용 사회정책부 기후변화팀장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