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스포츠는 경기장 안에서의 정치적 행위를 금지해왔다. 스포츠는 정해진 규칙 안에서 실력으로 경쟁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스포츠 정신’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달라지고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제이던 산초는 골 세리머니로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Justice For George Floyd)라는 문구가 적힌 옷을 드러냈다. 같은 리그 소속 마르쿠스 튀랑은 득점 뒤 ‘무릎 꿇기’ 세리머니를 했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2014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미국의 흑인 에릭 가너가 경찰의 목조르기에 의해 숨이 막혀 숨졌는데, 분데스리가의 앤서니 우자가 경기 중 가너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담은 옷을 드러냈다. 독일축구연맹은 우자에게 ‘경고’를 내렸다. 유니폼을 벗는 경기장 내 행위는 주심이 옐로카드로 대처하고, 정치적 행위 부분은 연맹이 대응하는 방식이다.
독일축구연맹은 산초와 튀랑의 행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다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피파는 “상식에 기초해 판단해달라”며 징계 반대의 뜻을 전했다.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은 “분데스리가 선수들의 세리머니에 대해 박수를 보내야 한다”며 한 발짝 더 나갔다. 주심이 경고를 준 것도 잘못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인종차별 반대는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다. 당파적인 정치 구호가 아니라면 허용할 수 있다는 흐름이다. 알렉산데르 체페린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은 “축구는 관용과 포용, 정의를 장려한다. 플로이드 추모 행사도 그렇다”며 동조했다.
스페인과 잉글랜드 프로축구가 곧 재개되면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더 많은 행위가 나올 수 있다. 이럴 경우 “도발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다”고 여겨지는 행동은 징계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 200m 금, 동메달리스트인 미국의 흑인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는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치켜들어 인종차별에 항의했다. 이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의해 자격이 정지됐고 살해 위협에도 시달렸다.
가장 보수적인 스포츠단체로 꼽힌 피파의 달라진 입장을 보면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김창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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