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임기 대통령이 두번의 기회를 갖는 건 행운이다. 남은 2년 중 개혁의 ‘골든타임’은 그리 길지 않다. 이념형 과제보다는 민생과 복지, 혁신에 초점을 둬야 한다. 특히 ‘한국형 뉴딜’의 경제적 접근을 넘어 ‘오스트리아식 상생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6차 비상경제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4·15 총선 승리로 문재인 정권의 남은 2년은 과거 정권들과는 사뭇 다른 무게감을 갖게 됐다. 3년이 지난 시점에서 국민은 다시금 정부에 나라의 틀을 새로 짜도록 명령했다. 5년 임기 대통령이 이처럼 두번의 기회를 갖는 건 큰 행운이다. 그만큼 2년 세월에 대한 책임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인데, 남은 2년 중 실질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문재인 정부 후반부 개혁의 ‘골든타임’은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21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6월부터 쳐서 기껏해야 1년 남짓이다. 어쩌면 제대로 일할 시간은 올해 연말 정도까지일 수도 있다.
다음 대선이 2022년 3월이니 내년 하반기부터는 대선 국면이다. 통상 대선 6개월 전인 9월, 늦어도 3개월 전인 12월까지는 후보 선출을 마쳐야 한다. 내년 여름쯤 각 당은 본격적인 대선 경선 국면에 돌입하고 찬 바람 불 때쯤이면 후보가 나올 것이다. 민주당의 차기 대표가 내년 3월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사퇴하면 시간표는 더 빨라질 수 있다.
정치의 초점이 차기 권력으로 이동하면 할수록 대통령의 존재감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코로나 위기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녹록지 않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위기를 기회 삼아 나라의 틀을 바꾸려면 비상하게 대처해야 한다.
첫째, 집권 초반처럼 모든 걸 하겠다고 달려들 순 없다. 불필요한 전력 낭비를 줄이고 실질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이념형 개혁 과제, 적폐청산식 과거사 문제보다는 민생과 복지, 혁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친일 행각을 벌인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 불가론과 같은 주장은 그 자체로 설득력이 없진 않지만 지금 제기하는 게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5·18, 세월호 등 굵직굵직한 과거 문제를 차분히 정리해 가되, 정권 초와 같은 적폐청산식 과거사몰이는 자제돼야 한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 역시 좀더 큰 틀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법으로 되지 않는데 억지로 사면할 수는 없다. 법 절차가 마무리되고 국민 여론이 큰 가닥을 잡는다면 순차적으로 사면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두환의 예를 들며 ‘반성 없는 사면’의 후과를 지적하는 주장은 백번 맞다. 박근혜는 이번 총선 때 불쑥 현실정치에 개입하려 했고, 이명박은 수십년간 국민을 상대로 벌여온 사기행각에 대해 여전히 고개 뻣뻣이 들고 반성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단죄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단죄의 시간이 있다면 용서와 화해의 시간도 있는 법이다. 폭넓은 개혁 동력 확보 차원에서 이 문제를 대승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둘째, 실질적인 여야 협치를 통해 개혁의 성과가 정책으로 구체화돼야 한다. 협치를 위한 협치, 말로만 하는 협력과 대화는 의미가 없다. 21대 국회 초반, 내년 대선 국면 전까지는 보기 드문 여야의 개혁 경쟁이 벌어질 수 있는 형국이다. 발목잡기가 아니라 누가 더 민생을 위하는지, 누가 더 코로나 극복을 위한 효과적 대책을 내놓는지 경쟁해야 한다.
특히 김종인식의 이른바 ‘진취적 보수’가 정말 진취적이려면 때만 되면 ‘각설이처럼’ 나타나 말잔치만 벌이고 사라지는 식이어선 안 된다. 김종인류의 경제민주화, ‘약자를 위한 보수’는 매번 선거 이후에 제대로 실천된 적이 없다. 보수가 제대로 실력을 보이려면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개혁의 골든타임 때 정책적 성과로 입증해야 한다.
셋째, 단기 성과도 중요하지만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나라의 근간을 새로 세운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형 뉴딜이 구체화하고 있지만 단순한 경제적 접근을 넘어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쪽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특히 미국식 뉴딜을 넘어 합의와 상생에 기초한 ‘오스트리아 모델’까지 바라봤으면 한다. 오스트리아는 전후 이념 갈등에서 벗어나 좌우가 협력해 국정을 관리하는 대연정, 즉 합의제 정치를 발전시켰고, 노사정이 협의를 통해 경제 및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이른바 ‘사회적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오스트리아는 이런 ‘두 겹의 합의체제’를 바탕으로 선순환의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일자리·복지 중심의 한국형 뉴딜을 넘어 개헌과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한 정치구조 쇄신, 노사정 합의에 바탕한 사회적 대타협을 구축함으로써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헤쳐나갈 촛불국가의 위용을 갖춰야 한다.
백기철 l 편집인 kcbae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