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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슈논쟁] 기업의 안전·준법 수준이 부른 ‘시대요구’ / 최명선

등록 2020-06-01 18:28수정 2020-06-02 10:38

최명선 ㅣ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

지난 5월2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영정을 든 70여명의 한익스프레스 이천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했다. 간발의 차로 살아남은 생존자의 고통 어린 증언과 유족들의 통곡이 흘렀다. 사고 당일까지 현장에서 회의하며 공기 단축을 지시했던 발주처가 ‘책임이 없다’며 꼬리 자르기를 하는 행태가 폭로되었다. 유족들은 참사에 대한 즉각적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2008년 이천 물류창고 40명 노동자 산재사망에 기업법인 벌금은 노동자 1명당 50만원에 불과했다. 쌍둥이 같은 사고로 2020년 38명의 노동자가 떼죽음을 당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를 외면했던 정부, 국회는 과연 이 죽음에 책임이 없는 것일까? 코로나19로 떨어진 제조업 가동률과 사업장 방역 폐쇄에도 불구하고, 올해 4월까지 산재사망 노동자는 315명에 달한다. 코로나 방역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 같은 한국은 수십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사망 1위 국가다. 부끄러운 현실에서 애도와 추모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정부 감독 강화,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원청 책임 강화, 사업장 예방관리 체계, 작업중지권과 노동자 참여 강화…. 세계 1위인 한국 산재사망의 대책이 그 어느 하나일 리는 없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기업 처벌 강화다. 한국의 사업장의 법 위반율이 90%를 넘기 때문이다. 삼성, 포스코, 현대제철 등 글로벌 대기업에서도 중대재해 발생 이후 실시한 산업안전 감독에서 수천 건의 법 위반이 쏟아졌다. 대기업은 안전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주장은 허세와 사기극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사업장 감독 평균 과태료는 사업장당 94만원에 불과하다. 법 위반에 의한 산재사망이 밝혀져도 기소율이 낮고, 실형은커녕 평균 400만원 벌금인 한국의 현실에서 다른 어떤 안전보건법 조항의 준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원청뿐 아니라 하청까지 ‘코샤’ 안전인증을 받았다던 현대제철. 그러나 2013년 아르곤 질식 사망으로 진행된 감독에서 그해 원청의 안전투자는 0원이었고, 안전관리비 책정과 지급 같은 기본 조치도 엉망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당진 현대제철은 당시 1년 반 동안 17명의 하청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2014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1천인 이상 사업장의 매출액 대비 안전투자는 전체 사업장 평균보다 낮았다. 한 해 사업장 안전보건 지출비용 경우, 500인 이상 제조업의 23%, 서비스업의 70%가 5천만원 미만이었다.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의무가 있는 사업장의 80% 이상이 한 달에 한두 번 점검 나오는 대행기관에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안전투자, 법 준수에 대한 척박한 인식은 저절로 변화할 수 없다. 한국의 사고성 산재사망의 절반은 추락 사망과 같이 기초 안전조치만 하면 막을 수 있는 전근대적 재해이고, 같은 유형의 산재사망이 반복된다. 산재와 재난 참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기업이 법을 준수하고, 안전에 대한 투자를 당연한 의무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안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예방과 연계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자본가 단체와 그에 경도된 전문가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그 어떤 제도가 도입되어야 산재사망을 줄일 수 있겠는가? 한국의 재해 유형과 기업의 법 준수율 등 현장의 현실을 바탕으로 제기되는 법 제정 요구를 ‘처벌 강화만을 주장하는 대책’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형량의 문제뿐 아니라 누구를 처벌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 제기다. 현재 적용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직접적인 행위의 책임을 묻는다. 안전난간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안전관리 비용을 책정하지 않은 사업주가 아닌 그 공정의 말단관리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양벌 규정으로 기업을 처벌하게 되어 있는 것이 산업안전보건법이지만 법리적 한계로 실제 처벌에서는 작동되지 않는다. 대기업일수록 책임을 분산해놓았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놓았다. 수많은 산재사망에서 노동자와 말단 관리자만 처벌받았고, 원청과 기업의 최고책임자는 처벌은커녕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2017년 5월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망사고도 마찬가지다. 사고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공기 단축을 요구하는 발주처와 원청의 요구가 있었고, 이에 통상적이지 않게 타워크레인과 지브크레인을 같이 사용하여 작업하면서 안전조치가 지켜지지 않아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책임자급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으며,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진 것은 지시에 따라 작업한 크레인 기사 노동자와 하청업체였다. 태안화력 김용균, 구의역 김군과 같이 특조위가 구조적인 사고 원인을 밝혀도 처벌은 조사 결과와 무관했다. 구조적 원인에 대한 책임을 기업의 최고책임자와 법인에 물을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방역으로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준 한국. 그러나 매년 2400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38명이 또다시 떼죽음을 당했다. 노동자들은 죽음으로 묻고 있다. 언제까지 이 죽음의 행진을 방치할 것인가. 언제까지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과 탐욕이 우선되어야 할 것인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존중하는 사회로의 실질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필요한가]

「지난 4월 한익스프레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로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는 피했으나 산재는 피하지 못한 이들이다. 대한민국에선 재해질병까지 포함해, 한 해 2천명가량 산재로 분류되는 죽음을 맞는다. 6월1일 기준, 코로나19 사망의 8~9배에 이르는 수치다. 코로나에 맞서는 국민의 경계와 경각이 하나인 것과 달리, 산재 사망·사고는 시민들 관심부터 제각각이다. 대개는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타당한지 필요한지 이제 시민이 판단해야 할 때다. 이해를 높이기 위해 두 이해당사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본다.」

[이슈논쟁]
기업 경영활동까지 제약하는 ‘과잉입법’ / 임우택

임우택 ㅣ 경총 안전보건본부장

지난해 사업장 사고사망자 수는 855명으로 집계됐다. 산재통계 산출 이후 꾸준히 줄어 처음으로 800명대에 진입한 수치다. 이러한 감소 추세에도 우리나라의 사고사망 만인율은 일본, 독일, 미국 등보다 여전히 2~4배 높다. 특히, 산업재해의 80% 이상이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고, 신규 근로자·외국인 등과 같은 취약계층에서 늘고 있다. 금번 이천 사고도 규모가 작은 건설업체가 시공하다 난 것이다. 안타까운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명확한 원인 규명과 대책이 속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천 사고 이후 노동시민단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살펴보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3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하 벌금, 법인에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과연 사업주 처벌만 강화한다고 해서 사망재해가 줄어들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산업재해를 효과적으로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처벌보다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 부족한 예산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투입하고 산재 발생 특성에 적합한 예방 정책과 사업을 추진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07년 제정된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을 모델로 한다. 법인과실치사법이 사고사망자 감소에 크게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국 내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현지를 취재한 국내 언론에 따르면 법인과실치사법 제정 전후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한다. 또한 이 법이 적용돼 처벌받은 곳은 일부 중소기업에 국한되며, 산재사망 기업에 대한 처벌은 대부분 우리의 ‘산업안전법’(산안법) 격인 작업장보건안전법(HSWA)으로 처벌되고 있어 법 제정의 효과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사업주가 기업경영을 총괄하나, 안전·보건 조치와 같은 기술적·실무적인 사항의 실행 여부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사고의 책임을 전적으로 사업주에게 묻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면 사실상 기업의 경영활동은 불가능해지고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 뻔하다. 일방적인 명분만을 강조해 비례의 원칙을 넘어선 과잉처벌은 모 사업주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부작용이 따르고 법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물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주 강제 수단은 꼭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산안법 규정은 이미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형벌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간 사고가 날 때마다 처벌 수준을 계속 높여온 결과다. 외국 입법례를 살펴보면 안전·보건 조치 위반 시 미국·일본이 최대 6개월, 독일이 최대 1년의 징역형을 규정하는 데 반해 우리는 근로자 사망 시 최대 7년의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다. 올해부터 시행된 개정 산안법으로 더욱 엄격한 사업주 처벌이 가능해졌다. 사망자를 반복 발생시킨 사업주의 형량을 50%까지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됐고, 법인에 대한 벌금도 10억원으로 상향됐다. 하청 근로자 사망에 대한 원청 사업주 처벌도 강화됐기 때문이다.

사업주 처벌 법정형에 비해 실제 선고형과 법인에 대한 경제적 제재가 미약하기 때문에 사업주가 이를 방치하고 산재 예방 투자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도 타당하지 않다. 현재 우리나라는 사망사고 발생 기업에 기업 규모에 따라 수천만~수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외국에는 없는 ‘중대재해발생 시 작업중지 명령’으로 인한 생산 차질 피해는 더 심각하다. 경총이 2017년 말~2018년 초 작업중지 명령을 받은 기업 실태를 조사한 결과, 평균 작업 중지 기간은 21일, 피해금액은 600억~12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기에 더해 사망재해 발생기업이라는 낙인과 기업명단 공표로 인한 회사 이미지 실추에 따른 경제적 손실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사망 발생 기업에 대한 벌금형과 단순히 비교할 것이 아니다.

규모가 큰 사업장은 대체로 안전관리 수준이 높은 편이다. 대기업의 사망사고에 집중해서 그렇지 사고사망자는 대부분 중소·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2019년 기준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사망자는 전체의 94.4%(807명)를 차지한다. 이러한 사업장은 사고와 직업병을 구분하지 않고 산업재해에 매우 취약하다. 정부와 공단의 산재예방행정서비스를 소규모 사업장과 같이 산재가 다발하는 취약사업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선진 외국들처럼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산재예방행정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서류 중심의 불필요한 규제 대신 현장의 위험 요인을 개선하는 데 정부와 공단의 감독 행정이 집중돼야 한다. 산안법상 사업주의 책임 범위를 역할에 맞게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원·하청 간 책임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서는 사업주 처벌을 아무리 강화하고 법원의 양형기준을 바꾸더라도 실효성이 없다.

사업장 스스로도 더욱 경각심을 가지고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사업장 안전은 결국 기업이 가장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 스스로 안전을 기업경영의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고, 안전한 사업장이 조성되는 데 적극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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