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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민중

등록 2020-05-28 18:22수정 2020-05-29 02:37

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꼽히는 쥘 미슐레의 <민중>은 1846년 발간된 첫날에 파리에서만 1천부 이상이 팔렸다. 그 책이 즉각적인 성공을 거둔 이유는 명백했다. 이 책은 역사책이자 동시에 사회학의 저서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슐레는 역사가로서의 통찰에 더해 노동자로서 자신의 경험은 물론 수많은 계층 출신의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이 책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프랑스의 제2공화정을 수립한 1848년 ‘2월 혁명’의 전야에 미슐레는 프랑스 사회 내에 고질적으로 만연해 있던 갈등을 인식하며 그것이 초래하는 사회적 분열과 증오가 조국 프랑스를 가리가리 찢어놓고 있는 것을 목도했다. 그는 이 책에서 나라에 대한 사랑을 통해 대립하는 집단들이 단결할 수 있는 새로운 믿음을 제시하려 했다. 단결의 주체는 민중이 되어야 했다. 따라서 이 책은 본질적으로 민중적 민족주의의 표현이라는 유진 웨버의 평결은 적절하다.

미슐레 스스로 이 책은 역사가로서의 연구라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의 산물이라고 밝힌다. 친구와 이웃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나눈 무수한 대화의 결과가 여기에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생산 수단의 소유를 기준으로 계급을 나누는 마르크스의 이론과 무관하다. 그는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압박을 받으며 작은 땅이라도 소유하고자 하는 소규모 자작농의 절실한 소망까지도 반영한다. 따라서 한 측으로는 산업화가, 다른 한 측으로는 민족주의가 진행되고 있던 유럽을 세밀하게 엿볼 수 있는 창구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책을 넘어선다. 이것은 나 자신이다. 그것이 이 책이 당신에게 속하는 이유이다.” 그 당신이 보수적인 제수이트 교단에 맞서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던 친구이자 동료 교수인 역사가 에드가 키네였다. 그 서문을 키네에게 헌정했던 이유는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민중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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