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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거리의 칼럼] 코너링 / 김훈

등록 2020-05-25 04:59수정 2020-06-28 16:23

2년쯤 전에, 어떤 권세 높은 댁 도련님이 경찰에 복무하다가 뛰어난 코너링 실력을 인정받아서 최고지휘관의 운전병으로 발탁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기막혔는데, 이 댁 도련님보다 훨씬 더 코너링을 잘하는 선수들이 있다. 이 선수들은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이다.

도심지 사거리에서 빨간불이 켜지면 라이더들은 신호 대기하는 자동차들의 틈새를 비집고 맨 앞으로 나와서 돌격선상에 대기한다. 신호가 바뀌면 오토바이들은 총알처럼 튀어 나가서 코너링한다. 사람의 몸과 오토바이가 옆으로 기울면서 90도 길모퉁이를 돌아 나가는데, 이때 각도를 오버해서 복원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어찌 되는가. 이것은 생사를 넘나드는 코너링이고 백척간두의 코너링이다.

짬뽕, 우동, 설렁탕, 곰탕, 물냉면 같은 국물이 있는 음식을 배달할 때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샌드위치, 햄버거, 통닭, 김밥은 수월한 편이다. 코너링 각도를 잘못 잡아서 국물이 흘러나오면 라이더의 임금은 깎인다. 과속방지턱에서도 국물은 흔들린다.

지난 4월29일 서울 지하철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전국 배달 라이더들의 총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라이더들은 코로나 재난 속에서 국민들에게 생필품을 배달해 방역에 기여한 공로를 자랑했고, 난폭운전으로 ‘불량배’ 취급을 받는 처지를 괴로워했다. 이들의 필사적인 코너링 속에는 자본이 인간을 분산해서 고립시키고, 고립된 개인들을 다시 조직해서 작동시키는 모든 장치가 들어 있다. 이들은 책임과 비용과 위험을 모두 짊어지고서 아무런 생산수단이 없어도 ‘사장’ 대접을 받는다. 플랫폼에는 뿔뿔이 흩어진 노동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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