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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서재정 칼럼] 평화를 원하면 미국에 관여하라

등록 2020-05-17 18:42수정 2020-05-18 02:08

북을 ‘깡패국가’로 정의한 것도 구태의연하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명확하고도 의심의 여지 없이 하기 전에는” 미국은 제재를 집행하고 억지 태세를 유지하겠다는 것도 낡은 레코드판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정부는 정상회담의 성과를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오래된 실패의 길을 다시 헤매고 있다.

서재정 ㅣ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가 출범 3년을 넘겼다. 5년 임기 중 2년이 남았다. 남은 임기에 원하는 정책을 수행할 동력은 차고 넘친다.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었으니 국회가 정부를 든든하게 받쳐줄 것이다. 여론 지지도 역대 최고급을 오르내리고 있다. 권력누수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요지부동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금강산 개별관광의 가능성을 운위하기도 했고 여러 사람이 남북 방역협조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이 최근 주력하는 평양종합병원 건설과 관련해 “의료기기와 의약품 등 전부 우리가 대주겠다고 통 크게 해야 한다”고까지도 했다. 그래도 북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국의 군사훈련과 북한인권보고서 등을 문제 삼으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평화경제를 실현할 방도는 없는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미국을 봐야 한다. 1950년부터 지금까지 전쟁을 하고 있는 교전 상대국이자 실질적으로 핵무기를 비롯한 가공할 군사력을 북에 조준하고 있고 오늘도 수많은 제재로 북의 목줄을 쥐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북의 생존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국가이다.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압도적이라고는 하지만 미국 때문에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하지 못해서 파생된 현상일 뿐이다.

해서 김정은 정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 단초는 미국에 있다. 그래서 묻는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6월 싱가포르 센토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새로운 북-미 관계를 수립”한다고 약속한 뒤 무엇을 했을까? “한반도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기로 한 다음 어떤 노력을 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후 반년이 지난 2019년 1월 미국 국방부는 ‘미사일 방어 검토’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 대통령의 합의 내용을 이행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북을 ‘깡패국가’로 정의했다. 새로운 관계가 아니라 오래된 관계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미사일 방어 체계에 대해 포괄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는 이 보고서는 ‘방어’라는 보고서 명칭에 어울리지도 않는 ‘공격작전’을 운위하기도 했다. 적극적 미사일방어 및 수동적 미사일방어 능력뿐만 아니라 “(적의 미사일) 발사 이전에 공격적 미사일을 격퇴할 수 있는 공격작전”을 구비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F-35 전투기를 이용해서 적국의 탄도미사일을 발사 단계에서 요격하고, 더 나아가 “적의 공격적 미사일 작전을 뒷받침하는 기반시설 전 영역을 타격할 수 있는 공격작전”도 언급하고 있다. 또 우주에 미사일 탐지 기기 및 요격 수단을 배치하여 “공격적 미사일을 적국의 영토 안에서 파괴”하겠다고도 했다. 이것이 미 국방부가 이해한 ‘한반도 평화 체제’였을까.

한국의 전문가들이 북의 ‘신형무기 4종 세트’라고 부르는 무기체계는 이 맥락에서 쉽게 이해된다. 미국이 선제적 ‘공격작전’ 능력을 개발하고 강화할수록 북은 은폐성 및 이동성을 높이고 발사시간을 최소화한 무기체계를 개발할 필요를 느낀다. 자신의 무기체계를 무력화할 수 있는 미군의 무기체계를 무력화할 무기체계를 배치하려는 욕구도 강해질 것이다. 미국과의 대화에는 점점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한국군의 작전과 무기체계가 미국과의 상호운용성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에도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반도 평화 체제는 시나브로 과거의 헛된 꿈이 되고 있다.

2019년 6월 미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도 오래된 적대관계를 되풀이하고 있다. 북을 ‘깡패국가’로 정의한 것도 구태의연하고,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명확하고도 의심의 여지 없이 하기 전에는” 미국은 제재를 집행하고 억지 태세를 유지하겠다는 것도 낡은 레코드판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정부는 정상회담의 성과를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북이 선제적으로,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취해야 이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이고 북도 ‘밝은 미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오래된 실패의 길을 다시 헤매고 있다.

해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미국에 과감한 ‘관여정책’을 펼쳐야 한다. 미국이 오래된 적대의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의 미래로 돌아서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북을 움직이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을 극대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평화를 원한다면 미국에 관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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