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증오 범죄’란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비하하면서 차별하는 범죄다. 그 구분은 성별, 인종, 장애, 언어, 종교, 외모, 성적 취향 등등 다양한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용어는 1980년대부터 통용되었지만, 실로 그 사례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한때의 피해자가 세월이 지나며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데, 이런 범죄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정치가들의 선동에 쉽게 이용될 소지가 많다는 데 있다.
네로 같은 로마의 황제들은 기독교도들을 박해하여 많은 사람들이 처형되거나 사자의 밥이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된 이후에는 이슬람 같은 이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16세기 유럽인들이 이른바 ‘신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할 때에는 토착 원주민들이 편견의 대상이 되어 식민제국 건설에 명분을 더했고, 노예제도 아래 미국 흑인들도 같은 운명을 겪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그 가장 현저한 사례일 뿐이다.
증오 범죄는 보통 ‘증오 연설’과 맥을 같이한다. 증오 연설의 특징 중 하나는 어떤 개인을 명시하는 것이 아니라 통칭으로 언급하며 집단 전체를 매도하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을 주도한 교황 우르바누스는 유럽 내부의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으로 이슬람이라는 공동의 적에게 눈을 돌렸다. 그 “사악한 인종”으로부터 땅을 탈취하면 토지 부족의 문제가 해소될 뿐 아니라 천국에도 도달하게 되리라는 선동이었다. 이것이 멀리 동떨어진 역사 속의 일일까? 개인의 잘못을 그가 속한 지역이나 단체의 이름으로 매도하는 일은 이곳에서도 얼마나 흔한가?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의 박선기 재판관은 증오 연설을 금지시켰더니 아프리카에서 증오 범죄가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사례를 제시한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은 증오 범죄를 부추기며 자신에게 반대하는 주들을 해방시키라고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조깅을 하던 흑인 아머드 아버리는 이런 와중에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