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언론의 농간과 영화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어진 충직한 선장과 사악한 선주라는 구도 속에서 타이타닉의 침몰과 함께 몰락했던 선주 브루스 이스메이에 대해서는 ‘뒤바뀐 운명’이라는 제목의 글로 그 내막을 간략하게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의 억울한 사연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얽혀 있기에 다시 그를 소환한다.
모든 것의 출발은 언론 족벌 랜돌프 허스트가 소유하고 있던 수많은 신문에서 그를 비난하자 다른 신문들이 그 뒤를 따른 것이었다. 그에게는 “타이타닉의 비겁자”나 “잔혹한 이스메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브루스라는 이름을 잔혹하다는 의미의 ‘브루트’로 표현한 것이었다. 시카고의 젊은 기자는 스미스 선장과 이스메이 선주를 대비시키는 시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죽음의 유령 같은 얼굴을 한 밤바다를 지키는 것이 선원의 임무라면/ 군중과 함께 줄행랑치는 것이 선주의 고귀한 권리.”
영화가 거기에 가세했다. 나치의 선전용 영화 <타이타닉>이 포문을 열었다. 돈만 밝히는 유대인을 부각시키며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것이었다. 이후 어떤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에서는 그를 인종주의자로 폄훼했고,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인기몰이를 한 제임스 캐머런의 영화가 관 뚜껑에 못을 박았다. 편파적 언론과 그릇된 목적을 가진 영화가 브루스 이스메이처럼 재산과 명성을 겸비한 사람까지도 얼마나 처절하게 파멸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스메이는 재판과 청문회를 통해 무죄임이 판명되었으나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침몰 사건에 대해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고 죄인처럼 지내던 그는 당뇨에 걸려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뒤 실명과 실어의 상태에서 사망했다. 가족과 후손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타이타닉 침몰 100주기인 2012년부터 큰딸의 아들과 손자가 이스메이의 명예를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