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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슈논쟁] 누더기가 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록 2020-03-30 18:56수정 2020-03-31 02:37

[이슈논쟁] 무도한 거대정당 넘는 시민의회로 개혁 / 최태욱

최태욱 ㅣ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비록 기울어지긴 했지만, 그동안은 그래도 운동장에서 벌어지던 양대 진영 대결 정치가 이젠 진흙탕에서 벌어지게 됐다. 무슨 명분으로 왜 싸우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거법 취지에 어긋나든 말든, 꼼수든 아니든, 민주주의의 퇴행이든 아니든, 어떻게든 이기면 된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최소한 다섯가지 요인이 서로 맞물리며 이루어진 결과로 보인다. 첫째는 양대 정당의 기득권 욕심이다. 두 당은 죽일 듯 싸우면서도 양당제 혜택만큼은 사이좋게(?) 공유해왔다. 따라서 둘은 다당제 발전을 촉진하는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 도입을 꺼려왔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이 바뀌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통과를 위해 군소정당들이 바라는 선거제도 개혁에 협력할 의지가 좀 생긴 것이다. 둘째 요인이다. 셋째는 군소정당의 개혁 열망이 너무 뜨거워졌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거제도 개혁은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기 위함인데, 그 개혁의 추진을 (합의 과정을 생략하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여보자는 유혹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채택한 방식이 넷째 요인인 ‘패스트트랙 연대’다. 마지막 요인은 그 연대의 결과물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다. 이 기이한 선거제도는 거대정당들에 온갖 꼼수를 당당하게 부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미래통합당은 선거법 개정 논의엔 참여조차 한 적이 없으니 그것에 구속될 까닭이 없다고 강변하다가 나중엔 새 선거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선거법의 취지를 무시하기로 작정하고 무력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비례성 원칙이 왜 중요한지 아는 정당이라면 차마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각 정당이 가급적 국민의 지지에 비례하는 의석을 갖게 하고, 그렇게 배분된 ‘자기 몫’의 권력으로 나름의 정치적 대표자 역할을 잘 수행하게 하려는 게 새 선거법의 목적이었는데, 이미 지역구에서 자기 몫 이상을 가져갈 수 있는 정당이 (주로 군소정당들의 몫으로 마련된) 비례의석마저 쓸어가겠다며 몽니를 부린 것이다.

물론 모든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에 동시 출마할 수 있는 이중등록제를 도입하거나 혹은 비례후보를 내지 않는 정당은 사실상 지역구 후보도 낼 수 없게 하는 규정을 두었더라면 그런 꼼수는 쓰지 못했을 게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방지책은 따로 있다. ‘제대로 된’ 비례대표제가 될 수 있도록 비례의석 비중을 높이고 지역구 비중을 충분히 낮추는 것이다. 지역구 비중이 작아 거기선 암만해도 자기 몫을 다 챙길 수 없다는 판단을 주요 정당들이 하도록 해야 비례의석과 정당 투표를 중시하고, 그래야 선거정치에서 당의 이념과 정책이 인물이나 지역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변수로 부상한다.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지역구 비중은 50%다. 만약 정당 득표율 30%와 지역구 승률 40% 정도를 유지하는 거대정당이 있다면, 그리고 총 의석이 300석이라면, 그 당은 대개 90석(300석의 30%)을 ‘자기 몫’으로 배정받아 그중 60석(지역구 150석의 40%)은 지역구에서 가져가고 30석은 비례의석으로 보정을 받는다. 자기 몫의 3분의 1을 비례의석에서 확보해야 하는바, 그 중요한 비례의석 확보 문제를 ‘일단은’ 다른 당인 위성정당에 맡겨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그 당의 독립 가능성을 생각해보라.) 그러나 지역구 비중이 84%인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셈법이 달라진다. 이 경우 상기 정당이 획득할 지역구 의석은 자기 몫을 크게 상회하는 101석(지역구 253석의 40%)이다. 비례의석 없이도 이미 과대 대표 되는 것이다. 여기서 위성정당을 세워 비례의석까지 챙길 수 있다면 다다익선이고, 아니면 그만이다. 지역구 비중이 클수록 (거대정당의) 꼼수 사용 유인은 커지기 마련인 것이다.

개혁세력을 자처해온 민주당이 미래통합당과 똑같은 꼼수를 쓰기로 한 것은 준연동형 조건에서의 자기 셈법에 따른 것이다. 양당제 유지에 관한 한 양대 기득권 정당의 선호와 선택은 거의, 언제나 동일하다.

그에 따른 총선 결과가 어떨지는 자명하다. 양당제 강화다. 총선 뒤 위성정당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면 비례성의 악화, 즉 거대정당들의 과대 대표 현상이 얼마나 심해졌는지 바로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양대 정당은 준연동형을 폐지할 게다. 그럴 게 아니라면 저런 선택들을 했겠는가. 군소정당들이야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제대로 된 개혁을 다시 하자고 외치겠지만 자체 추진력이 있을 리는 없다.

앞으로의 선거제도 개혁은 ‘시민의회 방식’으로 추진되길 바란다. 법 취지가 존중되지 않으면 법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모름지기 법은 합의의 산물이다. 합의 수준이 높을수록 사람들의 법 존중도도 높아진다. 양대 정당이 저토록 무도한 건 기본적으로 새 선거법의 합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친 것이라면 감히 어떤 정당이 그 법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국민발의제나 국민투표제가 없거나 부실한 현 상황에서 가장 간편하고도 효율적인 사회적 합의 도출 방식은 시민의회 소집이다. 이미 우리 정치권에서도 그 추진 여부를 진지하게 논의한 바 있다. 대통령이 1년 시한의 시민의회를 소집함으로써 그 공론장을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도록 하자. 어떤 선거제도가 좋을지 시민 스스로가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시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개혁안을 마련할 때 그 내용의 충실성은 물론 개혁의 실현성도 높아질 것이다.

『누더기가 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누더기’를 사이에 두고 얼마나 때묻고 해졌는지 다투는 게 너더래해 보인다. 누더기를 누가 만들었는지도 대략 안다. 그런데도 누더기가 된 까닭을 거듭 짚고자 한다. 누더기를 걸치고 치르는 21대 총선은 4월15일,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애초 찬성했던 전문가, 애초 반대했던 전문가 둘로부터 그럼에도 누더기가 되지 말았어야 할 이유, 기어코 누더기가 된 까닭을 들어본다. 둘의 입장이 달랐으나 분노가 비슷하고 총선 전망이 비슷하되, 다시 대안은 다르다. 보름 뒤 이 ‘누더기’는 다시 개혁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먼저 벗어던질 수도 있다. 그 동력을 우리는 유권자 의식, 시민 의식이라 부른다.」

[이슈논쟁] 예정된 실패, 원점에서 정당독점 개혁부터 / 김만흠

김만흠 ㅣ 한국정치아카데미원장·정치학 박사

개정된 선거제에서 치르는 첫 총선 정국이다. 위성정당을 비롯해 비례대표만을 겨냥한 정당들이 대거 등장했다. 지난 20대 총선의 21개를 훨씬 넘는 35개 정당이 비례후보를 등록했다. 3%였던 진입장벽은 이전 그대로다. 더구나 제1, 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띄워버려 결과적으로 소수정당에 특별히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도 아니다. 위성정당과 비례 공천을 둘러싼 볼썽사나운 모습은 더 두드러지고 있다.

준연동형으로의 제도 개편은 소선거구제에서 나타나는 사표 문제와 소수정당 배제 구조에 대한 개혁 대안으로 추진됐다. 비례대표 비중의 확대를 전제로 한 제도였다. 그러나 비례대표 규모 확대는 이뤄지지 않은 채, 배분 방식에서만 기존의 병립형과 다르게 전체 정수를 기준으로 바꿨다. 지역구의 사표는 그대로 남는다. 지역구 축소를 통한 비례 확대는 현역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에 막혔고, 의원 정수 확대는 집권여당 스스로가 국민 여론에 맞서 설득할 의지가 없었다. 결국 지역구와 비례의 비율이 5.2 대 1인 구조에 단서 조건이 많은 ‘누더기’ 연동형 비례제가 됐다.

이번 선거제 개편 방향은 그동안 득표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해온 거대정당들에 불리했다. 그럼에도 제1당인 민주당은 또 다른 정치전략을 고려해 손실을 감내하고 타협했다. 동시에 제도 개편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소수정당들이 민주당에 우호적인 세력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이른바 ‘4+1’ 세력이 그랬다. 그래서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타협책을 만들다 보니 ‘누더기’ 선거제가 되고 만 것이다. 제1야당인 통합당은 거대정당의 기득권 상실을 보완할 만한 소수정당의 공조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준연동형으로의 개편을 절대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제1, 2당이 모두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큰 정당들의 손실 우려는 없어졌다. 민주당은 한때 통합당의 위성정당을 두고 민심의 심판을 받을 거라고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민주당 주변에서 더 화려한 비례정당 전략이 펼쳐지고 있다.

정의당이나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비례 위성정당의 구성과 운영에 대해 헌법적인 문제까지 제기하며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위성정당의 설립을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 위성정당 설립과 공천 과정에서 공직선거법이나 정당법 위반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그러나 총선 이후의 문제로 보인다.

위성정당까지 동원된 양 진영 간의 싸움은 소수당에 대한 기회 제공이라는 선거법 개정 취지와 달리, 오히려 소수당의 활동 영역을 위축시키고 있다. 하기야 패스트트랙, 필리버스터 등 극단적인 진영 대결 속에 개정된 선거법 체제에서 진영 대결의 완화를 기대하는 것이 애초에 무망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양 진영 싸움에 지친 유권자들의 불만이 이후 기성 거대정당에 대한 심판으로 표출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비례대표에 대한 우려는 이번에 그대로 드러났다. 비례 위성정당 논란 속에 비례 전문 정당이 대거 등장하면서 비례대표 공천의 볼썽사나운 모습은 더 많아지고 노골화됐다. 연동형이 되면 정당들의 비례공천 방식도 달라지고 개선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주장도 있었다. 또 선거법도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구체화해 더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했다. 그러나 보다시피 강화된 절차에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유권자의 직접적인 검증 대상이 아니라는 비례대표제의 한계를 이용해, 비례대표가 정당 권력자와 정파 집단의 전리품으로 쓰이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거침없이 이뤄지고 있다.

총선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지금까지로 봐선 이번 선거제 개편은 실패했다. 사실 연동형 자체가 소선거구제의 보완책은 아니다. 비례대표제 확대와 결합한 연동형이었다. 우리가 빌려온 독일의 연동형은 100% 비례대표제 역사에서 소선거구제를 혼합하며 보완된 제도다. 그래서 기존 비례대표 배분 방식에 지역구를 포함해 계산한 것이다. 우리의 도입 경로와 정반대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이 1 대 1이지만 제도의 역사로 보면 비례대표제가 중심이다. 우리는 비례대표의 비중이 정수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데, 이를 민심의 척도로 삼고 있는 셈이다. 논리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 꼬리로 몸통을 흔드는 꼴이다.

비례 규모를 확 늘릴 수 없다면 기존처럼 병립형이 더 적절하다. 인물, 정책, 정당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는 성격이 다르다. 비례대표제 확대는 정당독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는 딜레마다. 비례대표는 정당을 통해서 매개되기 때문이다. 정당이 민심을 제대로 담지 못하면, 정당은 오히려 민심을 왜곡시킨다. 정치참여에서 정당의 독점적 역할이 무너진 지 오래다. 시대적인 흐름을 보더라도 민심의 매개체로서 정당의 독점적 기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요즘 우리의 정당정치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비례대표제 확대 이전에 정당의 독과점 체제를 온존시키는 특권적 제도들을 개혁해야 한다. 무엇보다 큰 정당에 우선순위와 기호를 주는 차별적 제도(공직선거법 제150조)는 개선되어야 한다. 국회에서 특별 대우를 받는 교섭단체에, 국고보조금에서도 또 특혜를 주는 문제를 비롯해 국고 보조 방식의 개혁도 필요하다. 정치제도는 여러 제도가 상호작용하며 그 효과가 나타나는바, 우리의 양극화 정치와 승자독식의 구심점에 현행 대통령제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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