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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하종강 칼럼] 대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등록 2020-03-24 18:15수정 2020-03-25 02:38

하종강 ㅣ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우리 기억 속에 한국 경제가 위기가 아니었던 시기는 거의 없었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면 그 위기가 더욱 강조됐다. 세월호 사건 때에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긴급민생대책회의’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사회 분열이 국민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발언을 하고 각 방송사들이 일제히 긴 시간을 할애해 각종 자료와 인터뷰들을 인용하며 세월호 사건 때문에 한국 경제에 얼마나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는지 설명하는 협박성 보도를 하자, 한 청년이 짧게 풍자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경제 이 개××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적이 없어!”

직장인들에게 강의하는 자리에서 그러한 내용을 소개하고 “그동안 회사 경영진이 위기가 아니라고 했던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나요?”라고 물었더니 한 사람이 “올해는 ‘진짜 위기’라고 했어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모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시무식에서 “올해는 ‘진짜’ 위기”라고 강조하던 사장이 스스로도 계면쩍었는지 웃더라는 것이다.

그동안의 경제 위기설은 정부와 기업이 시민과 노동자들의 요구를 억압하기 위해 부풀리는 측면이 강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닥치는 경제위기는 양상이 달라 보인다.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이나 정부나 기업이 강조하는 위기의식에 큰 차이가 없다. 심각한 상황을 누가 더 잘 표현하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과거의 경제위기가 특정 부위에 탈이 나 생긴 문제라면 지금은 전신마비에 가까운 상태”, “금융위기 넘는 퍼펙트 스톰”,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번엔 차원이 다르다” 등의 표현들이 날이면 날마다 쏟아져 나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적지 않게 큰일들을 겪었다. 4·19 혁명은 교복을 입은 대학생 형들이 트럭을 타고 팔을 휘저으며 지나가던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고, 5·16 군사 쿠데타는 아버지가 어느 날 입고 들어오신 ‘고리땡’ 옷감의 ‘재건복’으로 뇌리에 선명하고, 10·26 사건과 5·18 광주민중항쟁은 20대의 내 삶을 온통 지배했고,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세월호 사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체험했던 일들이다. 그런 일들을 겪고도 무사히 살아남은 자신이 가끔 다행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시련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신뢰하던 고용 전문가가 미국 정부가 주장하는 실업률 20%와 유럽 실업률이 2배 내지 3배 정도 늘어날 것을 가정하여 산출한 결과치를 보고 절망한 나머지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경제학적 표현이 실감 난다면서 임대료와 임금도 정부가 모두 지불하고, 노동자 해고도 금지하고, 돈을 하늘에서 뿌린다고 해도 아무도 시비를 걸 수 없는 상황이라는 내용의 글을 에스엔에스에 올렸다가 너무 반향이 크자 스스로 내리기도 했다.

민주주의야말로 코로나19에 맞설 수 있는 효율적 체제이고, 감염병에 취약한 권위주의 체제의 반대편에 바로 한국 모델이 있고, 재난 국면에서는 올바른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공공의료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대부분 동의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환자 이송 요원으로 일하던 병원 노동자는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는 응급실을 드나들었지만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8일 동안이나 일하면서 환자 164명, 직원 52명과 접촉했다. 용역업체 비정규직이라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관리를 담당했던 노동자 역시 환자와 함께 일하다가 감염됐지만 병원과 약국 등을 오가며 742명과 접촉했다. 외주업체 직원이어서 역학조사와 격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5년쯤 전에 있었던 일이다.

지난 3월14일,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다가 확진 판정을 받은 77살의 노동자가 결국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지금까지 간병인 노동자들에게 단 한 차례도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은 병원들이 많다. 병원에 지급하는 공적 공급 물량에 간병인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은 병원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5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어떻게 이다지도 달라지지 않을 수가 있는가?

평소 취약한 분야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지만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약자에게는 그러한 조처가 지옥일 수도 있다. 시급한 지원은 우선 그 사람들에게 집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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