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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등록 2020-03-19 18:24수정 2020-03-20 02:06

한채윤 ㅣ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미래통합당에서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소수자를 위한 공약으로 ‘왼손잡이 기본법’을 제시했다. 매년 8월13일을 왼손잡이의 날로 지정하고,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한다. 오른손 중심의 세상에서 불편함을 겪는 왼손잡이 국민들을 위한 정책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의아한 지점이 있다. 첫째, 왼손잡이용 생활용품 생산 지원을 명문화하고 생산용품 인증제도를 실시해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세제 지원 등을 하기 위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적용 대상에 왼손잡이를 포함시키겠다고 한 점이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이 개정하겠다는 법은 장애인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이다. 즉, 왼손잡이를 적용 대상에 포함한다고 해도 생활용품 생산 촉진이나 세제 지원을 할 법적 근거가 되진 못한다. 졸속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둘째는 왼손잡이의 인권을 옹호하는 정당이 정작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유엔에서도 권고하고 있다시피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향상시킬 기본 토대는 차별금지법이다. 왼손잡이를 위한 법을 제정한다면 차별금지법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진심으로 소수자를 위한다면 응당 튼튼한 토대 위에서 세부적인 지원책을 만들려고 할 텐데, 갑자기 특정 그룹만 따로 지정해 ‘따뜻한 동행’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거창하게 포장한다면 여기엔 다른 의도가 있는지 모른다. 보호가 아니라 배제하고픈 이들이 따로 있다든지 말이다. 이런 내심은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를 통해 드러났다. 지난 17일 그가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을 공격하기 위해 던진 질문은 동성혼에 대한 찬반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 미래통합당의 어느 지역구 후보 경선에서 벌어진 사건도 상징적이다. 한 후보가 경쟁 상대를 비방하기 위해 허위 문자를 돌리다가 당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 문자 내용은 ‘○○○ 후보는 동성애를 옹호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동성애자의 인권을 무시해야 국회의원 자질이 있다는 분위기가 당내에 깔려 있음을 방증한다.

이런 미래통합당에 뒤질세라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도 만만치 않다. 혐오 발언을 하는 후보는 공천하지 않겠다던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은 성소수자를 ‘선거에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거리로 취급하는 발언을 했다. 겹치는 장면이 있다. 2017년 대선에서도 그러지 않았는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계를 만나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후보는 며칠 뒤엔 여성들이 겪는 차별을 없애겠다며 성평등 정책을 발표했다. 그때 성적소수자 인권활동가는 대통령 후보에게 이렇게 외쳤다.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그 뒤로 3년이 흘렀다. 총선을 앞둔 두 거대 정당은 오히려 질문의 수를 늘렸다. 이제 한국의 성적소수자들은 이렇게 한탄한다. “나는 왼손잡이이고 동성애자입니다. 저의 인권을 반으로 나눌 수 있습니까? 나는 유권자이고 트랜스젠더입니다. 저의 인권의 반만 쓸모 있고 나머지 반은 가치 없습니까?”

벌써 몇 번째인가. 성적소수자도 분명히 대한민국의 국민인데 선거 때마다 이렇게 존재가 지워지고, 폄하되고, 배제당하고 버려지는 일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미래통합당은 알까? 공약대로라면 선거송으로 채택되어야 할 그 유명한 패닉의 ‘왼손잡이’라는 노래가 어떤 의미인지. 2013년 가수 이적은 방송에 출연해 ‘왼손잡이’는 성적소수자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이며, 소수자는 틀림이 아니라 다름일 뿐임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진정한 인권 의식이란 이런 것이다.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고루 담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한 인간을 온전히 존중하라. 그걸 못 하겠으면, 부디 정치를 하지 마시라. 인권을 나누고 자르는 선거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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