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민중의 역사가, 이이화

등록 2020-03-19 18:23수정 2020-03-20 02:06

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8년 전 이 칼럼을 통해 ‘민중의 역사가’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를 소개한 바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또다시 비슷한 제목으로 그에 대해 글을 쓰도록 만든다. 19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역사가 한 명을 꼽으라면 프랑스인 대다수가 주저 없이 그를 말할 것이다. 그는 <프랑스사>, <프랑스 혁명사>, <로마사>와 같은 방대한 저작을 남긴 것은 물론 잠바티스타 비코의 <새로운 학문>을 번역하여 그를 널리 알렸다. 그 스스로가 “비코의 번역자”라고 서명을 할 정도로 그는 비코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나는 학위논문에서 미슐레의 비코 번역과 관련된 문제를 다뤘다. 나의 논지는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비코의 방법론적 원리를 미슐레가 왜곡하여 민중 사학의 구호로 만들었지만, 그런 방식으로 그 당시의 시대정신에 부합하게 해석함으로써 비코가 더 널리 알려질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비코를 널리 알리는 데 미슐레가 크게 기여한 것은 확실하지만 그가 알린 비코는 왜곡된 비코였다는 나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러나 더 깊이 파고들어 갈수록 틀린 것은 미슐레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비코가 그 방법론을 확립한 것은 그것을 통해 어떤 역사적 실체에 대해 논파하고자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것이 바로 민중 사학이었음을 미슐레는 정확하게 간파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미슐레는 헌신과 희생의 능력이 고귀한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를 다룬 <민중>을 집필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나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것은 그 동인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교회와 정부의 권위에 당당히 맞선 미슐레는 민중의 사랑을 받았고, 그에 대한 전기 하나의 결론은 단지 그가 따뜻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성금을 보내 그의 묘비를 건립했던 프랑스 민중과 흡사한 심정으로 이이화 선생의 영전에 변변치 못한 글 하나 올린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1.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2.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3.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4.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사설] ‘명태균 게이트’ 수사, 이 검찰로는 안 된다 5.

[사설] ‘명태균 게이트’ 수사, 이 검찰로는 안 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