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정
아킬레우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모순적 영웅이다. 무적의 전사였고 무엇으로도 상처를 입지 않는 ‘강철의 몸’을 갖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테티스가 갓난아기였던 아킬레우스의 온몸을 저승의 스틱스강에 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아킬레스건’, 테티스가 아킬레우스의 몸을 스틱스강에 담그며 붙잡고 있던 발뒤꿈치에는 강물이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그 발뒤꿈치에 독화살을 맞아 죽었다.
해서 아킬레우스는 모순적이다. 한편으로는 영원히 아프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몸을 갈망하는 인간의 꿈을 육화했다. 하지만 그 꿈을 자신의 힘만으로 만들어보려는 개인주의, 그 개인주의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적 방식의 치명적 한계도 같이 육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티스는 바다의 요정으로서 자신만이 지닌 능력을 발휘해 제 아들만이라도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바로 그 ‘각자도생’은 아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을 맞아 아킬레우스를 소환하는 이유다.
신자유주의는 건강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었다. 헬스장에 회비를 납부하는 대가로 ‘몸짱’을 사고, 병원과 약국에 비용을 지불하여 건강을 사는 것이었다. 심지어 건강한 모습의 상징인 젊음, 적어도 젊은 모습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스스로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땀을 흘리고 근육을 강화하고 심폐기관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건강은 자신의 책임이자 권리라고 사방에서 아우성이었다. 돈이라는 ‘스틱스강’에 몸을 담그면 ‘아킬레우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19는 그런 신자유주의의 아킬레스건을 물었다. 당장 돈이 있어도 마스크를 살 수 없다. 돈이 있어도 면역을 살 수 없고 치료도 살 수 없다. 건강을 사기 위해 찾은 헬스장이나 병원, 약국에 감염자가 있다면 오히려 치명적이다. 자기 혼자서 아무리 땀을 흘리며 근육을 키우고 심폐를 강화해도 바이러스를 막을 수는 없다. 물론 건강하고 기저질환이 없다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회복될 가능성이 크기는 하지만 길고도 고통스러운 투병기간은 피할 수 없다. 감염 검사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개인의 자율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둔다면 감염의 기하급수적 확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해서 이제 모두 국가의 개입을 청한다. 검사와 방역에도, 환자의 격리와 치료에도 국가가 나서기를 바란다. 물론 비판의 목소리도 많다. 국가의 개입이 너무 늦었다, 너무 미온적이다, 정교하지 못하다… 등 개입의 방식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국가의 역할이 사활적이라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하는 모습이다. 중국의 시진핑 정부는 초기 대응에 대해 비판을 받았지만 추후 강력한 통제정책을 펼친 결과 감염자의 폭증을 막는 데 성공해, 초기의 예상과는 달리 정권을 공고화하는 모습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는 변덕스러운 대응정책으로 비판을 받으면서도 특별조치법을 개정해 정부의 각종 통제 권한을 강화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입국금지를 선언한 것에서 보듯 이제는 개인별 각자도생을 넘어 ‘국가별 각자도생’을 추구하고 있다. 자국의 건강과 안전만이 최우선이라며 국경에 장벽을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마스크와 의료장비의 수출을 금지하고, 정부의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등 각 국가가 ‘테티스’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한계를 안고 있는 세계보건기구는 이 와중에 시나브로 더욱 힘을 잃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수십개 나라가 대놓고 국제보건규칙을 어기고 있고, 발병 상황을 공유하라는 의무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려는 지구적 협력은 요원하다.
돌이켜보면 국제보건규칙이 만들어진 1969년 이후 세계는 건강이라는 지구적 공공재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며 큰 진전을 이뤘었다. 1967년 한해에만도 1500만명을 감염시키고 200만명을 죽일 정도로 위세 등등했던 천연두를 박멸한 것이 1979년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1980년대를 거치며 각국 정부는 건강 및 보건 예산을 크게 삭감했고, 보건 원조가 줄어들며 저개발 국가들의 보건 서비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 에볼라, 사스, 메르스 등 각종 전염병이 세계를 도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하나가 된 지구에서 각자도생은 불가능하다. ‘아킬레우스’를 꿈꾸다가는 그의 운명을 맞을 것이다. 건강은 함께 가꿔야 할 지구촌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