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밑바닥 민심이 심상찮다. 2017년 탄핵을 지지하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상당수가 돌아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코로나 사태에 편승해 공포와 혐오를 부추기는 보수 야당과 언론의 ‘공포 마케팅’이 일부 먹힌 탓도 있겠지만, 현 정부에 대한 누적된 실망감도 무시할 수 없다.
여론조사상의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이 늘 앞섰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총선 이슈를 추적해온 갤럽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여론이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보다 늘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그러다 지난 2월에 ‘정부 지원론’(43%)이 ‘정부 견제론’(45%)에 처음으로 추월당했다. 민심의 변곡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일부 지지층의 이탈은 정부 여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조국 사태가 분수령이었지만 ‘민심을 읽지 못하는 오만한 여당’의 행태가 반복된 탓도 크다. 촛불연대의 한 축인 중도층의 이탈은 진작부터였다. 본디 총선은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크고 심판의 욕망이 발휘될 가능성도 크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가 그 욕망에 불을 지폈다. 보수 야당과 언론이 공포 마케팅으로 ‘정권붕괴’를 선동하는 이유다. 이들이 공동체의 재난에 신이 난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공포 마케팅이 보수 야당에만 그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집권당이자 지지율 1위를 달려온 원내 1당의 비례연합정당 추진도 본질은 ‘공포 마케팅’에 가깝다. 민주당은 “촛불혁명 세력의 비례후보 단일화를 통해 탄핵세력이 1당이 돼 탄핵을 추진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민주연구원 비공개 보고서)는 논리로 비례연합정당을 기정사실화했다. ‘민주대연합론’, ‘진보정당사표론’ 등 87년 민주화 이후 30년 넘게 다양하게 변주되어온 공포 마케팅의 2020년 버전이다.
물론 잔여 임기 2년 남짓의 문재인 정부가 야당의 발목잡기로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 이참에 연합정치를 적극 모색해야 한다는 논리는 나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연대인지에 대한 합의와 정책적 준비가 전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래서는 ‘명분도 실리도 없이 중도층만 잃는 전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의 경우 2016년 총선에서 5%포인트 안팎으로 민주당이 어렵게 승리한 선거구가 18곳이나 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면서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자신감이 없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할 정도다.
공포에 휩싸이면 현실을 냉철하게 보지 못한다. 공포가 두려운 진짜 이유다. 한국리서치 3월1~2일 여론조사를 보자. 민주당이 고려 중인 위성정당에 관해 물었는데, ‘필요하다’는 25.7%에 그쳤고 ‘필요하지 않다’가 58.3%나 됐다. 중도층에서는 59.1%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고, 25.9%만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필요 없다’는 의견(48.1%)이 ‘필요하다’(40.9%)보다 많았다.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을 추진할 경우 중도층 이탈과 지지층 분열이라는 치명적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공포를 걷고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선거에서 이슈는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슈를 다루는 태도다. 코로나 사태 대응에서 문재인 정부가 비판받을 부분도 적잖지만, 책임지는 모습만큼은 확고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 같은 꼼수가 아니라 투명하게 정공법을 썼다. 확진자가 급증하는 부담을 감수했지만 국민들은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갤럽 정기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는 44%로 전주보다 반등했다. 메르스 때 40%에서 29%까지 지지도가 추락했던 박근혜 정부와 확연히 대비된다. 공동체의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는 미래통합당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하다. 정략적 접근에는 역풍이 부는 법이다. 공포를 걷어내고 우리가 직시해야 할 냉정한 현실이다.
선거 때면 책사들이 기발한 묘수를 내놓는다. 대개는 꼼수다. 위기일수록 정공법이 필요하다. 정책적 비전과 대안을 통해 지지를 호소하는 담대한 전략이 결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공포와 분열의 선동에 맞서 상식과 이성에 대한 신뢰로 공동체의 미래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촛불의 힘으로 출범한 정치세력의 소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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