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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평화의 수호자

등록 2020-03-12 18:05수정 2020-03-13 02:07

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1320년대 초반 이탈리아반도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바이에른의 루트비히와 교황 요한 12세의 권력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교황과 동맹인 나폴리 왕국과 프랑스가 밀라노를 위협하자 그곳에 거점이 있던 신성로마제국에서 군대를 파견해 방어하려 했다. 교황은 루트비히를 파문에 처하고 황제의 자리를 포기하라고 종용했지만 루트비히는 새로운 도발로 응수했을 뿐이다.

전쟁은 총칼로만 치른 것이 아니었다. 펜과 잉크가 더 강력한 무기였다. 당시 파도바의 마르실리오는 <평화의 수호자>라는 저서를 통해 신성로마제국의 명분을 옹호했다. 펜이 칼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저서가 제정 분리와 민주주의의 원칙은 물론 인권을 지키기 위한 교본의 하나로 받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파도바 대학교의 의학도였던 마르실리오는 성서의 권위를 폭넓게 차용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이 교황청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그는 예수가 세속계의 권력을 가진 적도 없었고, 교회가 그런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의도한 적도 없었다고 논파한다. 교황에게 주어진 특권이란 찬탈해 간 것에 불과하니 공허하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교회는 세속적인 문제는 물론 영적인 문제에서도 국가에 종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자는 국민의 일부일 뿐이고 세속계의 지도자는 국민 전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마르실리오의 이론은 근대 국가의 특징 중 하나인 제정 분리의 원칙을 천명한 것이었고, 그것은 개신교의 종교개혁 운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국민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이 선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원칙의 선구자로 꼽히기도 한다. 그는 충족적인 삶을 향한 인간의 자연적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 정부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선구가 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을 누가 허사로 만들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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