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동춘 칼럼] 재난취약 국가, 재난취약 사회

등록 2020-03-10 18:26수정 2020-03-11 09:00

김동춘 ㅣ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이번에 중국인들과 중국 동포가 거주하는 안산 등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드물었기에 망정이지 이곳에서 10명의 확진자라도 나왔다면 ‘중국인 때리기’는 거의 광기 수준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그런데 보수언론과 야당은 ‘중국(인) 차단’이 먹히지 않자 이제는 마스크 대란을 이유로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이 국가재난 상태에서 이들 언론과 제1야당은 정권 꼬투리 잡아 공격하는 일로 시종했다.

이번과 같은 큰 재난은 언제나 공포와 불안을 가져오고, 이 불안은 정치세력과 언론의 선동으로 거의 패닉 상태로 변할 수 있다. 만약 집권세력이 패닉 상황을 조장할 경우, 사실이 왜곡 과장되고 사회 내의 특정 소수자들은 희생양이 된다. 정치세력이 불안심리와 생존본능으로 허우적거리는 대중들의 편견을 자극하면 결과는 매우 비극적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중세교회가 ‘마녀’를 만들어내 사냥을 했듯이,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우물에 독을 탔다”는 선동으로 조선인 5000여명을 학살한 일본 우익세력은 정권의 위기를 조선인에게 돌렸고, 6·25 전쟁 발발로 패닉에 빠진 이승만 정권은 이미 전향한 보도연맹원 수십만명을 ‘빨갱이’ 사냥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정치세력의 두려움과 권력유지 욕망은 단순 재난이나 전쟁 상황을 대참사로 만들어버린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10일 오전 빌딩 외부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입주자들이 검진을 받기 위해 줄서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10일 오전 빌딩 외부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서 입주자들이 검진을 받기 위해 줄서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 역시 우리 인류의 잘못된 개발주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변종 바이러스 발생과 재난을 일단 상수로 본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재난을 수백, 수천 배로 확대시킨 것은 역시 정치권력이었다. 중국이 좀더 투명하고 민주적인 국가였다면 우한의 초기 위험을 통제하여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대구에 집결하거나 다녀간 신천지 교인들이 자신의 행적을 제대로 밝히거나 정부의 자가격리 요구를 지켰더라면 이 사태는 2월 중순 상황 정도로 통제되었을 수도 있다.

이번 한국 정부도 지난 메르스 사태에서 큰 교훈을 얻어 진단키트를 발 빠르게 만들었고 관련 행정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서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진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련 공무원과 의료인들의 헌신성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상인들이 마스크를 사재기하고, 정치인과 언론이 불안을 조장하거나 정부를 때리는 선동적 보도를 반복하고, 일부 사람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멋대로 하면서 상황은 크게 악화되어 아까운 목숨이 희생되었고, 하루벌이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의 생존도 벼랑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역병에 대처할 공공의료가 극히 취약하고, 폭증하는 환자를 제대로 수용할 병원도 치료할 의사도 크게 부족하고, 이런 역병을 깊이 연구하는 기관도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은 여전히 재난취약 국가이고, 다가올 재난에도 취약성을 노출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처, 세월호 사고 대처 과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가 부재, 정부 무책임이었고, 신자유주의적인 기업의 영리추구 조장 정책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였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 자세도 비슷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이란이나 이탈리아의 경우도 정부의 미비한 시스템 탓이 클 것이다.

재난 등의 위기는 언제나 그 국가나 사회의 평소 상처를 드러낸다. 재난의 위험은 사회적 약자에게는 비수가 된다. 그리고 누가 국가나 사회에 책임이 있는 세력인지, 누가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언론과 정치권이 제대로 사실을 공개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재난은 참사로 변한다. 이번 신천지 신도들이나 대형교회 목회자가 보인 반사회적인 행태는 최악이었다. 그들만의 공동체를 위해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념 자체를 무시하거나 갖지 못한 이들의 행태는 한국 시민사회의 일그러진 얼굴이었으며, 이 사태가 진정되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장애인, 환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폐쇄병동, 집단격리시설 정책 자체도 재고해야 한다. 전염병 확산은 개인이나 기업이 해결할 수 없다. ‘의료특별시’를 부각해왔던 ‘메디시티 대구’는 가장 재난에 취약한 도시임이 드러났다.

한국이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재난취약 국가에서 벗어나면 기후환경 위기,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그리고 다음에 올 전염병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는 선진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은 지구적 재난취약 문명을 극복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