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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유랑 지식인

등록 2020-03-05 18:26수정 2020-03-06 02:07

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에 학문과 사상의 중심은 프랑스의 파리였다. 따라서 계몽사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프랑스에 치중해 있고, 독일과 영국의 선구적인 철학자나 과학자에 대한 이해는 그에 부수적으로 뒤따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영국의 계몽주의를 철저하게 파헤친 로이 포터의 대작 <근대 세계의 창조>가 번역 출간된 것은 작지 않은 쾌거이다.

그런데 유럽 사상의 뒷골목 정도로 폄하되었던 나폴리에서 대단히 창조적인 지적 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졌다는 주장이 있다. 나폴리 출신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는 피렌체가 시와 예술을 대표한다면 나폴리는 사상과 철학으로 두드러지기에 나폴리가 이탈리아의 수도가 되어야 했다고 논한다. 애향심으로부터 나온 주장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 그는 나폴리 출신이 아닌 역사가 엔리코 첸니의 논지를 그 주장의 근거로 인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폴리에서 역사가 피에트로 잔노네는 인권을 옹호하며 수많은 추종자를 이끌었다. 그는 <나폴리 왕국의 시민사>라는 저서에서 가톨릭교회와 이단 재판소의 권위를 빌려 왕국을 지배하려던 교황청에 맞서 시민들의 정부가 국정을 주도해야 할 당위성을 논파했다. 결국 그는 파문되었고 그 책은 교황청의 <금서목록>에 오름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중요성을 입증했다.

그는 망명에 나서야 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호의를 얻어 빈에 상당 기간 머무른 뒤 나폴리 복귀를 꿈꾸며 베네치아에 거주하다가 그곳에서도 모함을 받아 개신교도의 제네바에서 피신처를 구했다. 부활절 미사를 드리라는 꼬임에 넘어간 그는 교황청으로부터 사르디니아가 독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음에도 사르디니아 정부의 요원에 의해 납치된 뒤 토리노로 이송되어 그곳의 감옥에서 마지막 12년을 보냈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잔노네의 저서를 방대하게 활용했다. 이렇게 나폴리는 영국의 계몽주의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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