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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풀먼 포터

등록 2020-02-20 18:31수정 2020-02-21 02:07

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포터’는 물건을 운반해주는 사람, 즉 ‘짐꾼’을 뜻하는 말인데 어느 정도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역사가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통념에 위배되는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해준다는 사실에 있는데, 이 단어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특히 풀먼 열차 제조회사에서 고용한 객차 내 승무원을 가리키는 풀먼 포터는 역사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기차는 물자와 인력을 대량으로 수송함으로써 영국에서 출발한 산업혁명을 추동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기업가였던 조지 풀먼은 남북전쟁이 끝난 뒤 여기에서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을 예감했다. 대륙횡단철도 건설의 초창기였던 1860년대 말에 풀먼은 호화로운 침대차를 제작했다. 하인들의 시중을 받던 부유층이 기차 여행을 하면서도 그들만의 생활 방식을 이어가도록 하겠다는 그 발상은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기차를 제작하는 노동자들의 도시까지 만들어야 할 정도의 성공이었다.

풀먼은 남북전쟁 이후 쏟아져 나온 흑인 해방 노예들을 그 기차에서 시중을 드는 사람으로 고용했다. 그들을 ‘풀먼 포터’라고 부른다. 풀먼으로서는 비용 절감의 차원에서 기획한 일일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의 생활수준 역시 대단히 높은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도 많다. 그렇지만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풀먼 포터’는 흑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았으며 결과적으로 흑인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다만 풀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거기까지일 뿐이다. 1893년부터 시작된 불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임금 삭감에 의존함으로써 결국 노동자들은 이곳 칼럼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풀먼 파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30여명이 숨진 그 파업을 통해 유진 데브스(철도노조 지도자, 이후 미국 사회당 대선 후보)는 사회주의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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