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훈 ㅣ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방안
[정부의 검찰개혁과 그에 맞물린 시민사회의 논쟁이 ‘2라운드’로 접어든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안에 이어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제시한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방안, 그리고 법무부의 공소장 비공개 조치가 새 탄목이 되었다.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오는 21일 예정된 전국검사장회의는 당장의 고빗사위가 될 법하다. 진영 간 내지 정부-검찰 간 갈등의 프레임을 넘어, 사안의 타당성을 깊이 짚어볼 만하다. 두 전문가가 논리와 논거를 달리하되, 정부의 검찰개혁 진정성이 매우 중요하다거나 진정성이 의심받을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 닮았고, 검찰 내 수사·기소 분리가 현행법 위반일 수는 없다는 해석이 또 닮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과 형사소송법 등이 공포되었음에도 검찰개혁에 관한 논쟁이 여전히 뜨겁다. 사실 최근의 쟁점은 종래 학계나 실무에서도 많이 논의되지 않은 주제들이다.
이 중 법무부 장관이 공소장 전문을 야당 국회의원에게 제공하지 않고 공판 개시까지 비공개로 결정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광범위한 언론 보도가 비단 국민참여재판(배심재판)에서뿐 아니라 법관 재판에서도 공정한 재판에 위협이 되고 실제 재판 결과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은 독일의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졌다. 그렇기에 공소사실 공개에 대하여 영국, 미국, 독일 등은 처벌 규정을 두고, 국민의 알권리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조화시킬 수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발전시켰다. 우리도 이를 참고하여 과도하게 유죄의 예단을 야기하는 공소장 기재 방식을 제도적으로 혁신할 필요가 있다.
국민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일수록 피고인의 권리는 더욱 중요하며, 흉악범이든 정치범이든 무죄추정의 원칙과 적법절차는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같은 중대한 사건이라면 더욱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중요하다. 영국의 경우에도 공정한 형사절차의 발전은 지금과 같이 민감한 정치사건을 계기로 가능하였다. 피고인인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은 검찰의 공소장을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공문서”라고 조목조목 비판하였다. 이제 법무부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을 비판하기보다는 향후 야당 의원이 피고인인 사건에서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도록 요구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을 수사검찰과 기소검찰로 역할을 분리하는 것을 추진할 의사를 피력하였다. 이러한 방안은 일단 검토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고 평가된다. 최근 <뉴욕 타임스>에 의하면, 미국 법무부가 소속 검사의 결정을 심사하기 위하여 외부 변호사를 고용하였다고 하고, 영국 중대부정수사처(SFO)의 조직은 크게 수사부와 공소부로 구별되어 있으니, 선진국에 전례도 있다. 혹자의 주장처럼 검사의 기능 분리를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가 적용되는 판사에 비교할 것은 아니다. 검사장이나 검찰총장은 자신이 직접 수사하지 않고도 보고에 근거하여 결재하는 점에서 법원과 완전히 다르다. 또한 지금도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는 수사검사와 공소유지를 맡는 공판검사로 검찰 내 역할이 분리되어 있다. 수사와 공소유지가 분리될 수 있다면, 수사와 기소도 분리될 수 있다. 영미는 이미 경찰과 검찰로 분리되어 수평적으로 협력하지 않는가.
윤석열 검찰총장은 ‘수사는 기소에 복무하므로 분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기소는 재판을 위해 존재하고, 재판에 복무하므로, 기소권자와 재판권자도 분리할 수 없다는 시대착오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실 중세유럽이나 조선시대에는 기소권자와 재판권자가 동일인이었다(규문주의). 그러나 이로 인해 많은 인권침해가 있었고, 고문이 횡행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극복하고자 근대시민혁명 이후 재판권자와 기소권자를 분리하여 검사제도가 탄생한 것이다(탄핵주의).
나아가 수사와 기소를 동일인이 담당하여 발생한 권한남용과 인권침해 등의 폐단을 막아보고자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담당하는 제도로까지 발전시켰다. 이런 역사적 발전을 모를 리 없는 검찰총장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 방안에 대하여 미약한 근거로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경솔할 뿐 아니라 검찰개혁에 반대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살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의 발언은 최근의 검찰개혁법안 이후에도 검찰이 기소권은 가진 채 수사권도 상당 부분 유지하므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것이다. 다만, 영미식의 수사와 기소의 철저한 제도적 분리가 아닌 소심한 내부적 분리 방안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방안을 평가하기 위해 영미식의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의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검찰 내에서의 소심한 분리에 만족할 것인지 논해봐야 한다. 기소 결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하여 미국식의 기소대배심이나 기소심의위원회와 같은 일반시민이나 전문가에 의한 관여를 제도화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검찰 내부에서 수사검사와 기소검사를 분리하는 방안은 기소를 좀 더 신중하게 하여 어느 정도 의미는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직접 피의자를 심문하고 증거를 접하면서 얻게 되는 과욕과 확증편향을 별도의 검사가 한번 걸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좀 더 근본적으로 경찰과 검찰의 역할 분리를 계속 추진하면서, 경찰의 구조와 기능을 개선하는 것과 병행하여야 한다. 아울러 법무부 장관 발언의 시점과 강도에 주의해야 한다. 자칫 현안인 사건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 아닌지 의혹을 자초하여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 한 연구교수의 비판적 칼럼에 더불어민주당이 과도하게 반응하여 오히려 역풍을 맞고, 심지어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당해 칼럼이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결정했음에도 사과를 요구받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구용역을 발주하거나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 안건으로 회부하여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현재에서 적절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해방 이후 수십년간 고착된 제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다가올 총선 이후에도 개혁세력이 다수로서 검찰개혁의 동력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