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춘 ㅣ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이번의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이제 인간이 만들어낸 위험이 확실히 국제화되고 일상화되었다는 것을 잘 드러내준다. 이러한 새로운 바이러스에 의한 생명의 위험과 더불어 아마 기후·환경 위기, 식량 부족, 물 부족 등 그것과 연관된 갈등과 전쟁의 위험은 곧 닥쳐올 지구적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나 대참사를 맞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 정부의 대처 과정을 보면서 민주주의와 진정한 국민 기본권 보장, 책임정치가 여전히 위험의 안전판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매우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메르스 확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국내 확진자 발생 후 16일 만에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하는 등 사실상 무대책의 행보를 보인 것과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손 씻고’ ‘마스크 쓰는’, 즉 각자가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국가, 사회의 안전판이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공공병원 비율이 6%에도 못 미치는 한국의 실정을 생각해보면, 장차 이런 사태가 재발하여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지난번 진천, 아산에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은 지진, 환경 재앙, 전염병 등으로 인한 재난과 위험은 별로 겪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전쟁, 안보위기 위험은 만성적으로 겪었다. 그리고 시장의 위험, 즉 해고, 비정규직화, 산재 등으로 인한 생존 위험은 매우 심각하다.
지진이나 전염병 확산과 같은 준자연적 위험이 닥친 경우에는 과거 3·11 동일본 대지진이나 이번의 중국처럼 평소 국가의 책임성과 공공성 여부, 진정한 국민주권의 보장 여부가 가시화되고 폭로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의 위험, 즉 일상과 일터에서의 생존과 안전과 관련된 사안에는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한국과 세계 서민 대중은 전염병보다 매일매일 감당해야 할 ‘위험’ 때문에 불안하다.
우선 공공의료의 미비로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질병과 사망의 위험은 신종 바이러스의 위험보다 훨씬 심각하다. 한국에서 매일 37명이 자살하고 6명이 산재로 죽는 일은 또 어떠한가? 이들에게 ‘삶의 위험’은 만성적이고 그들 죽음의 상당 부분은 국가의 무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즉 시장의 위험은 곧 특정 계급, 계층에게 가혹하게 닥친다.
시장의 위험은 곧 사회적 권리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것은 주택, 의료, 교육 모든 영역에서 국가의 공적 개입이 극히 미약하기 때문에 초래된다. 공공병원의 비율과 건강보험 보장률이 매우 낮은 것에 더하여, 사립대학이 전체의 85%를 차지하고, 대학 등록금 자가 부담의 비중이 80%를 넘고, 임대주택의 비율이 5% 정도에 그치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적 지출이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사실이 그것을 웅변해준다.
이러한 심각한 시장 위험 때문에 대다수 한국인은 여전히 한국이 ‘각자도생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극히 경쟁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정신적으로 피폐한 상태에 있다. 시장 위험을 최대로 축소하여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의료, 주택, 교육 등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영역에 ‘영리’의 논리가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이익이 있다면 철저하게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면 국가는 기업이 국민의 생명권, 주거권, 교육권과 관련된 일로 돈을 벌기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정책의 목표와 방향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서울 집값을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서민의 주거권 보장이 목표가 되어야 하며, 지방대학 붕괴를 막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고등교육의 정상화나 공공성 확대라는 목표 아래 당면의 사안을 다루어야 하며, 산재사망 규모 축소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며 산업안전 보장을 위한 기업의 책임성 강화와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 증진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시장의 위험에 더 심각하게 노출된 서민 대중의 안전 보장과 기본권 강화를 목표로 설정하면 정책의 수단이나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일부 정치권 인사들처럼 의료, 교육, 주택의 공공성이 비교적 높은 유럽 복지국가가 추구한 정책 대안이나 이번에 민주당이 제안한 토지공개념까지도 아예 ‘사회주의’라고 몰아붙이면 애초에 대화가 불가능하다.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