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ㅣ 사회비평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메르스 등에 비해 치사율이 낮고 증상도 가벼운 편으로 알려졌다. 바짝 긴장할 필요는 있지만 지나치게 두려워할 이유는 적다. “시민은 과한 불안을 갖지 말고 당국은 과할 정도로 대응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그런 점에서 적절했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위원에 따르면, “신종 감염병 관련 정부 직접 지출액은 2015년 약 700억원에서 2020년 약 2천억원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비교 자체가 굴욕일 수 있겠으나, 전임 대통령을 떠올리면 감동적일 지경이다. 미안하지만 칭찬은 여기까지다. 최근 청와대와 민주당이 신종 감염병보다 치명적인, 그야말로 대형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2020년 1월9일, 소위 ‘데이터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 정보통신 관련법처럼 들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법안, 즉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사실 개인정보법 패키지다. 그런데 ‘개인정보’라 명시하면 껄끄러우니 데이터라는 단어로 ‘세탁’한 것이다. 요약하면 ‘시민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기업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법안’이다. ‘데이터3법’이 본회의를 통과하자마자 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은 “만세! 드디어 데이터3법 통과!!”라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그 정도로 재벌이 학수고대했던 법안이다.
‘데이터3법’이 통과되자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바이오헬스 핵심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한다. 유전질환 가족력, 임신·분만·유산 등 개인의 모든 진단·치료 기록을 기업이 활용할 수 있게 빗장이 열렸으니, 그간 공공성·인권의 가치로 보호되던 영역을 이제 기업이 마음껏 뜯어먹게 하자는 제안이다.
일례로 ‘혁신의료기술 정책’을 보자. 이 정책에 따르면, 환자에게 의료기기를 사용해 수술·처치·검사하는 행위를 평가할 때 지금까지는 ‘치료효과’가 기준이었으나 앞으로는 경제성장을 위한 ‘잠재성’을 기준에 넣겠다고 한다. 치료효과는 떨어져도 경제에 도움만 되면 혁신의료기술로 지정해주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소비자 의뢰 유전체 검사’ 항목도 대폭 늘리겠단다. 시행될 경우 시민들의 불안을 이용해 필요도 없는 유전자 검사를 부추기는 ‘건강 공포 마케팅’이 기승을 부릴 게 명약관화하다. ‘건강 인센티브’ 제도도 있다. 건강관리 잘하면 건강보험 비용을 할인해주겠다는 내용이다. 건강 불평등, 즉 빈곤과 건강의 관계는 이제 상식에 속한다. 가난할수록 더 빨리 죽고 더 많이 아프다. 반면 부자일수록 건강하고 오래 산다. 자본·정보·여유가 있어서 건강관리를 잘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의 건강보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부자들의 건강보험 비용을 깎아주겠다 선언한 셈이다.
‘데이터3법’과 ‘바이오헬스 핵심규제 개선방안’은 두 가지 큰 의제를 품고 있다. 하나는 ‘정보 인권’이다. 청와대는 지난 1월 비서실장 명의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의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해 달라’는 공문을 국가인권위원회에 보내고는, 나중에 “실수”라며 철회했다. 독립기구인 인권위에 청와대가 저런 공문을 보낸 것 자체가 명백한 권력남용이다. 물론 조국 전 장관의 인권, 중요하다. 형식은 부당했지만 취지는 공감할 만했다. 그래서 더더욱 묻고 싶다. 그렇게 인권에 예민한 정권이, 왜 시민의 정보 인권은 기업에 팔아넘겼나.
다른 하나의 의제는 ‘의료의 공공성’이다. 문재인 정권의 의료보건 정책 기조는 ‘영리화’로 수렴한다. 이런 기조로 달려갈 경우 정해진 목적지는 하나, ‘부자만의 의료낙원’이다. 이번 감염병 사태에서도 드러나고 있듯, 국가가 직접 통제 가능한 공공의료기관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갈등과 혼란이 순식간에 비등한다. 감염이 크게 확산하고 영리병원의 사회적 책임 방기가 겹칠 경우, 대응 시점을 놓쳐 사회 전체가 패닉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공중보건·의료 영역은 개별 정권의 역량이나 예산 책정에 기댈 게 아니라 국가의 항상적 시스템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갖가지 규제 완화 및 영리화 정책으로 시스템의 근간부터 허물고 있다.
정보 인권과 의료 공공성은 기업에 막 던져줘도 되는 ‘먹을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 존엄과 평등을 최소한의 수준에서 보장해주는, 민주주의의 가능 조건이다. 감염병보다 치명적인 정부·여당의 폭주,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