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ㅣ 한양대 의대 교수
희망은 없다. 새로운 마음으로 맞는 연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등이 보여주는 현실은 암울하다. 애써 희망을 찾아보려 해도 이번 전염병 유행이 마지막이 될 것 같지 않고, 날이 풀리면 황사가 날아오고 일본은 조만간 기어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할 기세다. 우리 인류의 ‘마지막 싸움’(
<한겨레> 2019년 4월4일치)의 승패는 이미 결정 난 듯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떤 이들은 인간의 ‘망각’을 탓한다. 우리는 사스(2002), 에볼라(2013), 메르스(2015) 유행을 겪었지만, 전세계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여전히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뿐이다. 체르노빌 사고(1986)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2011) 이후에도 제대로 된 탈원전 정책은 아직 시작도 못 했다. 그런 점에서 “역사가 전해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인간들이 역사로부터 그리 많은 것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라는 올더스 헉슬리의 말은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이 ‘망각’의 배후에 진짜 범인이 있다. 과학 발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희망’이 그것이다. 신종 감염병, 미세·초미세먼지, 환경오염, 대량살상무기 등으로 인한 종말론적 위기는 모두 한때 우리가 찬양해 마지않았던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것이다. 철학자 한스 요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로메테우스로 상징되는 불의 권력(과학기술)이 한때 유토피아를 가져다주는 듯했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과학은 욕망의 정치를 따라 흐른다. 과학을 권력의 수단으로 여기는 자들은 신종 감염병의 유행이 삼림 파괴, 빈부격차와 연결되어 있음을 감추고 그 책임을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나 기껏해야 박쥐, 아니면 손을 씻지 않은 특정 지역 주민의 비위생으로 돌린다. 그러는 사이 지난 한해 브라질에서만 서울시 면적의 15배에 이르는 열대우림이 사라졌다. 양식장 물고기와 가축들에게 대량의 항생제가 투여되고,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연간 800만톤이 넘는다. 인류 출현 이후 지구상 동식물의 멸종 속도는 과거 멸종기보다 1000배나 빨라져 북극곰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것 역시 대부분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기술 때문이다.
우리를 더욱 절망하게 하는 건 촛불 정권이라고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함께 싸웠던 가장 뜨겁고 똑똑했던 이들이 대통령, 청와대 핵심 인사, 국회의원, 장관, 국장이 됐지만 과학기술의 광폭한 질주를 막기는커녕, 검증도 안 된 바이오헬스, 4차산업만이 살길이라면서 연일 안전장치를 풀기에 바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하지 못했던 규제 프리존을 허용하고, “유전자 다이어트 하세요”를 외치는 사기극을 ‘한국 미래의 성장동력’이라 부르고, 최근에는 개인의 신체정보마저 기업에 넘겨주는 데이터 3법까지 통과시켰다. 전문가 회의는 관료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위원회로 전락했고, 국민 생명의 안전장치는 그저 ‘규제 샌드박스’라는 ‘요상한’ 이름과 현란한 보도자료로만 남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치, 경제, 관료 권력이 동원한 논리는 “과학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러면서 감염병의 대유행을 막겠다는 것은 헛말이고 영리 유전자검사, 건강서비스 등을 활성화하여 불필요한 검사, 항생제, 약물 남용을 야기하면서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도 위선이다.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갈수록 무소불위의 힘을 키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과학에 성찰이라는 안전장치를 장착하여 시민과 생태계의 질서 아래 두자는 이야기다. 어려워도 국민들에게 새로운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상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란 말이다. 개발독재 정권이 아니라 촛불 민주정부이니 더더욱 그렇게 하라는 이야기다. 기억하라! 300명의 젊은 영혼을 바다에 묻고, 오늘도 수없는 노동자들이 꽃잎처럼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첨단과학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래도 내가 있어 이만큼이라도 막은 것이다”라는 권력 실세 옛 동지의 말은 그럴듯하지만 또한 구차하다. 여력이 없었다고도 하지 말라. 각종 규제 완화 법률을 통과시키지 않는 것은 지금 의석수만으로도 충분했다. 이런 나를 최대주의자, 근본주의자라 말하지 말라. 원칙에 철저하지 못하다고 나를 다그치던 이들은 바로 당신들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희망이 만들어낸 것이다”라고 말한 마틴 루서 킹의 말은 어떤 의미에서 맞는 말이다. 과학이라는 ‘희망’은 이제 ‘절망’까지 만들어냈다. 희망이 바로 절망이기에 희망은 없다. 꽃들은 어디로 갔나? 당신들이 거기 있어도 변한 게 없다. 희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