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윤 ㅣ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20년 전쯤의 일이다. 목욕탕에 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있는데 다른 곳에 앉아 있던 나이 든 여성 한 분이 스윽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양손으로 내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러곤 “어, 진짜네”라고 혼잣말처럼 읊조리곤 다시 총총히 사라졌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너무 놀라서 난 그저 멍하니 있었다. 큰 키에 짧은 머리, 화장이나 치마, 액세서리 등 어떤 여성적인 꾸밈도 하지 않아서 성별을 헷갈리게 한 내 탓인가 싶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성별이 그토록 궁금했다면 물어보면 될 일이 아닌가. 어떻게 타인의 몸을, 그것도 가슴을 함부로 만질 수 있는 걸까. 이상했다. 성별이 의심스러웠다면 바지를 벗을 때까지 기다려도 되는데 왜 서둘러 가슴을 움켜쥔 걸까. 아무래도 나를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로 의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 그분이 만져본 뒤 ‘가짜 가슴’이라고 판단하면 그 뒤로는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 나는 억울해하며 목욕탕에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며 진짜 여성임을 증명해야 했을까.
2년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목욕을 마치고 옷도 다 챙겨 입은 상태였다. 마침 탕에서 막 씻고 나온 중년의 여성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목욕탕 관리자에게 호통을 치듯 말했다. “남자를 여탕에 들이면 어떡해!” 두 번이나 반복해서 크게 말하자 지목당한 나보다 관리자가 더 당황해하며 “아니에요. 저분 여자 맞아요”라고 진정시켰다. 너무 어이없는 상황인지라 도리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상했다. 그는 여탕에 남자가 들어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알몸을 전혀 가리지 않은 채 태연히 서 있고,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내게 소리치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따졌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가. 정말로 나를 남자로 착각한 것은 아닌 것이다. 여자가 여성스럽지 않은 것이 못마땅했나. 일부러 면박을 주려고 괜한 소리를 한 것이다. 어디서든 타인의 성별을 감별하고 평가하는 자격증이라도 획득한 사람처럼 구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그 무례함 때문에 항상 마음이 상한다. 특히 남의 성별은 그토록 쉽게 의심하면서 자신의 성별에 대해선 과도할 만큼 자신감에 차서 심사하려는 그 태도에 화가 난다. 트랜스젠더를 두고 성별을 자기 마음대로 정한다고, 성별을 생각으로 정한다고 비난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나도 내 성별을 여성이라고 확신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여성으로 보일 만큼 충분히 여성스럽게 꾸미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별을 늘 의심받는다. 그렇다면 나의 성별을 자신의 머릿속 잣대로 생각해서 결정하는 건 누구인가. 왜 알려고 질문하지 않고, 살아온 삶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흔적에만 관심을 가지고 타인의 성별을 본인이 생각해서 정하는가.
이제, 나도 되물어보고 싶다. 이 질문들에 오늘 한번은 혼자라도 답을 찾아보길.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언제 자신의 성별을 처음 알았습니까? 어떤 사건이 있었나요? 당신의 주민등록번호는 당신이 생각하는 성별과 일치합니까? 만약 일치한다면 그 두 개를 일치시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기울인 노력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통상 주민등록번호는 출생신고서에 기반해 부여됩니다. 당신의 출생신고서는 당신이 작성했습니까? 아마 당신이 막 태어나서 움직일 수도 없어서 당신의 출생신고서는 다른 사람이 작성했을 것입니다. 그는 당신의 염색체도 검사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에게 묻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성별을 결정해 기입했죠. 그럼에도 주민번호와 당신의 성별이 일치하나요? 거듭, 두 개를 일치시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기울인 노력이 있습니까? 없다면 그저 우연의 일치입니까? 진정한 노력 없이 그냥 정해진 성별이 정말 당신의 것이 맞을까요? 불안하진 않으세요? 다시 한번 더,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