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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상헌, 바깥길]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할 때

등록 2020-01-21 18:10수정 2020-01-22 11:06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새해다. 결심이 없을 수 없다. 그러자니 오스카 와일드의 야유가 들린다. 새해 결심이란 그 시작은 허영이고 결과는 공허한 법, 마치 ‘잔고 없는 통장에서 수표를 남발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나는 그의 날 선 혀를 두려워한다. 짐짓 준엄한 결심은 접고, 마음을 다잡아보려 한다. 이것마저 없으면 새해 새날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내 눈과 내 마음을 의심하라고 늘 알려주는 사람은 당대의 평론가 존 버거(버저)다. 그는 영국을 떠나 프랑스 농촌에서 안거하며 일하고 보고 썼다. 왜 쓰냐는 질문에 그는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디가 ‘빈 곳’인지조차도 모르는 나는 그저 마음이라도 북돋워 애써야 한다. 술잔과 수다를 멈추고, 보고 살핀다.

우선 나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취급한 것을 반성한다. 직원들에게는 박하고 자신에게 관대했던 르노-닛산 사장은 기상천외의 작전을 펼친 끝에 일본을 탈출했다. 부당한 사법체계에 맞선 ‘저항’이었다는데, 그 작전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온갖 전쟁에서 뇌물 주고 수천만달러의 군수계약을 따냈던 이라고 한다. 내 것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닮은꼴의 두 사내가 ‘정의’의 이름으로 뭉쳤다. 기업을 키운 건 자신의 공이라며 저들의 ‘정의’는 통곡한다. 지구의 정의를 위해 찾아온 외계인들, 어쩌면 존재할지 모른다.

기술혁신도 아찔할 만큼 눈부시다. 월스트리트는 한 치의 오류도 허용하지 않도록 한다길래 금융개혁을 하는 줄 알았는데, ‘퀀텀 금융’(quantum finance)을 도입하여 빈틈없는 컴퓨터 체계를 만들겠단다. 금융위기가 ‘미숙한’ 컴퓨터 탓이라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이런 눈부신 컴퓨팅이 필요한 곳에서는 무소식이다. 온갖 잔꾀가 동원되는 탈세와 불법을 잡는 데 디지털 기술만한 묘약이 없다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십년째 노래를 부르고 주요 20개국(G20)에서 합의도 했건만, 여긴 절간처럼 조용하다. 환자 이동을 돕는 로봇 개발은 더디지만, 의료보험 처리비용을 줄이려고 인공지능은 바쁘다. 또 첨단기술은 방위산업에 몰려든다. 힘센 나라끼리 주먹질해대는 판에 방위산업의 주가는 높아지고, 이른바 혁신의 선두주자들은 ‘구시대 산업’ 국방 용역을 따내려고 경쟁하고 있다.

이렇게 보란듯이 ‘나쁜’ 경제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나쁜’ 경제학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바네르지와 뒤플로 부부가 최근 <어려운 시절을 위한 좋은 경제학>(Good Economics for Hard Times)을 펴냈는데, 결론이 도발적이다. “경제학은 경제학자에게 맡겨두기에는 너무 중요하다”였다. 소수의 금전적 이해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에 복무하는 ‘좋은’ 경제학을 키우려면 ‘나쁜’ 경제학이 서성거리지 못하도록 바짝 긴장하라는 뜻이다.

긴장해야 할 이유는 많다. ‘나쁜’ 경제학은 많고 집요하며 적극적이며 얼핏 듣기에 그럴듯하다. ‘좋은’ 경제학은 원론적이면서도 복잡해서 “그래서, 뭐”라는 볼멘소리 듣기 십상이다. ‘나쁜’ 경제학은 내버려두어도 되니 걱정 말라며 사람을 안심시키지만, ‘좋은’ 경제학은 숙제거리만 안겨주고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이래저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 쉬운 상황이니, 이 경제학자 부부는 자기부정적인 결론을 경구 삼아 남겼다.

나 같은 삼류 경제학자는 좌불안석이다. 내가 경제학으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설익은 쌀을 한 끼로 내놓는 일이다. 혹 배탈이 날 수도 있음을 알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배를 채울 방도를 알지 못하니 그저 정성스럽게 챙겨 내놓을 뿐이다. 그나마 내게 위안이 있었다면, 그건 밥 짓는 방도를 신통방통 잘 아는 경제학자들 덕분이었다.

조지 애컬로프도 그런 ‘좋은’ 경제학자다. 사람의 행동과 심리를 ‘경제적 합리성’으로 뭉뚱그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경제현상을 설명했다. 1980년대에는 아내와도 의기투합해서 ‘공정임금’(fair wages)이라는 ‘파격적인’ 이론을 내놓았다. 노동자는 자신의 임금이 공정하다고 느끼는 만큼 일하기 때문에, 넉넉한 임금은 높은 생산성으로 돌아온다. 공정한 임금은 곧 효율적인 임금인 것이니, 기업이 짠돌이 노릇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되겠다. 그는 노벨상을 받았고, 그의 아내 재닛 옐런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냈다. 경제학계의 스타 부부다.

그가 얼마 전 ‘나쁜’ 경제학의 역사를 반추하는 글을 썼다. 경제학이 경제위기를 예측하지도 못하고 어설픈 위기극복 정책만 쏟아내게 된 연유를 개인적인 소회까지 곁들여서 설명했다. 노학자의 자조와 한탄이 진하게 배어 있는 이 논문은 “딴에는 노력했으나 나도 결국 그렇고 그런 경제학자”였다는 아픈 고백으로 맺는다. 이런 뼈아픈 통찰 때문에 그의 글은 열정적이고 진보적이었으며, 심지어 정의롭기까지 했다. 그의 ‘좋은’ 경제학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날 뻔했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그의 짧은 글에 소개된 논문 때문이었다. 유난히 꼼꼼하게 소개된 이 논문의 저자도 역시 애컬로프다. 조지 애컬로프가 아니라 그의 아들 로버트 애컬로프.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은, 견실한 연구실적을 가진 경제학자다. 영국의 어느 대학에서 조교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아빠’가 아니었다면 인용될 이유가 없는 논문이었다.

물론 대수롭지 않은 에피소드일 수 있다. 간간이 있어왔던 관행이기도 하겠고, 부모 사랑을 ‘학문적으로’ 표현했다고도 할 것이다. 세계적 거물의 속 보이는 사랑표현이라며 피식 웃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도 변한다. 애컬로프가 예전에 쓴 것처럼, 우리의 관념도 변하고 사회적 규범도 변한다. 웃고 넘길 일이 이제는 더이상 우습지 않다. 그의 글은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옳지’는 않다. 그를 개인적으로 타박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의 문제다. ‘옳음’을 말하는 ‘우리’가 실상 길을 막고 서 있다는 것이고, 존 버거가 말한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 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문제다.

정약용의 호는 여유당이다. 노자에게서 따왔다고 한다. “망설이기를 겨울에 시내를 건너듯, 겁내기를 사방 이웃을 두려워하듯 한다.” 같은 동네 사람만 두려워하고 정의의 핏대를 올릴 일이 아니다. 동네 밖의 ‘사방 이웃’을 두려워해야 할 때다. 쓰고 말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말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와일드의 야유가 다시 들린다.

(‘바깥길’이라는 문패를 달고 쓰는 첫 글이다. 바깥길은 안쪽이나 중심으로 들지 않는 길이다. ‘집을 떠나 떠도는 길’이기도 하다.)

이상헌 ㅣ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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