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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넓은 의미의 휴머니즘

등록 2020-01-09 20:33수정 2020-01-10 02:06

조한욱 ㅣ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지난주 칼럼으로 이탈리아의 휴머니즘을 좁은 의미로 해석한 학파의 대표자인 크리스텔러를 소개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 균형을 맞춰야 한다. 넓게 해석한 학파의 창시자는 한스 바론으로 알려져 있다. 그도 크리스텔러와 마찬가지로 독일 출신으로서 저명한 신학자 에른스트 트뢸치의 제자였다가 히틀러가 권좌에 올라서면서 유대인으로서 위협을 느껴 이탈리아와 영국을 거쳐 최종적으로 미국에 정착했다. 그는 도서관의 사서이자 연구원이었다가 마지막에 시카고대학교의 교수로 학자의 경력을 마쳤다.

바론도 ‘후마니타스’라는 말이 단지 ‘학문’을 뜻하는 단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런데도 그가 크리스텔러와 구분되는 것은 학문 내부의 변화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시대상의 변화까지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그에 따르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1400년 무렵에 크게 성격이 바뀌어 고전 고대와도 구분되면서 이후 드러나게 될 그 자체의 특징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공화정을 이루려던 때와 일치하고 그 장소도 그것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피렌체 공화국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휴머니즘의 성장과 시민 정치의 발흥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주장은 ‘시민적 휴머니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내게는 크리스텔러와 바론의 관계가 부럽다. 수사학과 관련된 저서를 읽었다. 르네상스로부터 18세기까지 꼼꼼하게 정리한 그 책을 읽으며 그 저자는 크리스텔러의 제자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서문을 읽어보니 추측이 맞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박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킨 그 저작을 비판적으로 읽으며 조언을 아끼지 않은 사람 중에 한스 바론이 들어 있던 것이다. 학문들 사이에 담장을 치는 것도 모자라 학문 내부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반목이 예사로운 이곳의 풍토에서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 담장을 없애지는 못할망정 낮춰지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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