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새해가 되었다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니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다. 암담한 장래 때문에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여론조사는 우리의 마음을 몹시 쓰리게 만든다. 그 젊은이들을 너그럽게 받아줄 외국은 있는가. 지금은 난민의 시대, 떠돌이 유민들이 창궐하는 시대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오늘날의 난민은 기본적으로 ‘환경난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골치 아픈 현안이 되어 있는 이슬람 난민들이나 중남미 난민들은 무엇보다 극심한 가뭄과 기근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유랑민들이다. 좀 더 극적인 경우는 차오르는 바닷물 때문에 거주가 불가능하게 된 남태평양 섬들의 주민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국제원조 기관과 이웃 나라들의 도움으로 큰 육지로 이주하는 게 지금까지는 가능했으나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심히 불투명하다. 지금은 곤경에 처해 있지 않은 나라가 없기 때문인데, 대표적인 예는 오스트레일리아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남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의 이주를 도와준 그 오스트레일리아가 지금 걷잡을 수 없는 삼림화재로 아비규환이다. 지금까지 남한 면적의 절반이 불에 타버린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는 문자 그대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 사진으로만 봐도 이 지역 최대 도시 시드니의 하늘은 온통 핏빛인데다가 자욱한 연기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다. 그 짙은 연기 속으로 집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미친 듯이 헬리콥터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지구 종말의 날을 그린 영화 장면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보도에 따르면, 벌써 스무명 이상의 인명이 희생되었고, 많은 집과 공동체가 붕괴하고 숱한 생명체가 불에 타 죽었다. 군대까지 동원되었지만 이 재앙이 언제 끝날지, 끝나는 날이 오기는 할 것인지, 지금은 누구도 모를 가공할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는 얼마간의 비가 내려 산불 확산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고 하지만 불길은 이미 너무도 널리 그리고 깊게 번져버렸다. 더욱이 예년의 경우를 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산불이 본격화되는 것은 이제부터라고 한다. 도시민들의 삶도 삶이지만 숲속의 원주민, 동식물들, 그리고 아까운 생태계가 얼마나 더 파괴될 것인가.
오랫동안 오스트레일리아는 우리의 뇌리 속에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의 나라, 원시적 고요가 훼손 없이 보존되어 있는 나라였다. 또한 그 해변은 상쾌한 바람을 쐬며, 끝없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넓고 긴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장소였다. 물론 옛날에는 어디서든 존재했던 그런 장소는 지구 전체가 개발 광풍에 휩싸이면서 어느새 특권적인 장소로 변해버린 탓에, 오스트레일리아는 많은 관광객을 유혹하는 특별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지금 유례없이 처참한 재앙을 겪고 있다. 이 사태가 잘 수습되지 않는다면 오스트레일리아는 3류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남의 불행에 대해 잔인한 말을 하는 감이 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비극은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번의 산불은 자연적이되 동시에 비자연적인 재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들도 지적했지만, 특히 현지의 소방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이 제어 불능 상태가 된 결정적인 요인이 기후변화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27년간의 산불 진화 경력을 가진 어떤 지역 소방책임자는 자신이 평생 겪은 것 중에서 이번처럼 강도가 세고 속도가 빠른 산불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번 산불은 건조하고 더운 계절마다 반복되는 단순한 산불재해가 아닌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동쪽에 있는 세계 최장의 산호초(그레이트배리어리프)가 대규모로 사멸되어 가고 있는 현상도 같은 원인, 즉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수 온도 상승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에 왜 환경론자들이 많은지 궁금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은, 뜻밖에도 오스트레일리아가 생태적으로 매우 취약한 나라라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그곳 도시의 평균 기온은 연일 40도를 훨씬 웃돌고, 곡창지대에도 가뭄이 몇 해째나 계속되고 있다. 물 부족 사태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조만간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강우 전선이 대륙 아래로 내려간 지점에서만 형성될 것이라는데, 이 예측대로라면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이 사막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다.
이 모든 게 기후변화 탓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기후변화와 화석연료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해왔다. 이 점에서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구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가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고 무책임할까? 필시 그 주된 원인은 화석연료 산업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제 구조에 있음이 분명하다. 현재 세계 전체의 이산화탄소 배출 중 오스트레일리아가 점하는 비중은 3.1%다. 오스트레일리아 인구(2700만)가 세계 전체의 0.3%라는 점을 고려하면 큰 도덕적 책임을 느껴야 할 비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세계 최대의 석탄 및 천연가스 수출국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를 수입하여 쓰는 나라들(중국, 인도, 일본, 한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대체로 환경규제가 느슨하고, 개발욕망이 매우 강한 나라들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화석연료 소비량과 관계없이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에 속하는 나라임이 틀림없고, 그런 점에서 이번의 산불 재앙에는 인과응보라는 측면이 명백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재앙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오스트레일리아 못지않은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오늘날 무역의존도가 특히 심한 한국의 주요 수출·수입품은 석유 관련 제품 일색이다. 산유국도 아니면서 이토록 기이한 한국 경제의 틀은, 언제 어떤 파국이 닥칠지 모르는 기후변화 시대에, 극히 위태로운 자멸적 구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온갖 정황으로 보건대 지금 우리에게 가장 긴급한 것은 탄소 경제를 청산하고 생태 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치열한 모색과 사회적 토론과 정치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금 한국의 미디어와 지식인들은 (따져보면 화석연료 시대의 기득권 구조를 유지·강화하는 메커니즘에 불과한) 선거 이야기만 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