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 한마리가 5일 오전(현지시각)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수풀 앞을 뛰어가고 있다. 캔버라/EPA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시작된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산불이 해를 넘겼지만 꺼질 기미 없이 호주 전역을 달구고 있다. 호주 산불로 서울시 104배 면적이 불타면서 숨진 이가 24명에 이르고 코알라와 캥거루 등 야생동물 5억마리가 죽었을 정도다. 꺼질 줄 모르는 호주 산불이 이상기온의 영향을 받은 걸로 추정되는데다 한국에서도 겨울철 이상고온이 이어지자 기후 변화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기후변화는 호주 산불의 ‘불쏘시개’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서쪽 온도가 높고 동쪽 온도가 낮은 인도양의 ‘쌍극화’ 현상이 11월까지 강하게 나타나 호주를 건조하게 만들었다. 산불 지역인 뉴사우스웨일스는 호주에서도
원래 건조해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편이었는데, 최근 들어 심해진 건조화와 45도 넘는 지속적 폭염으로 산불이 더 심하게 퍼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은 “기후 변화로 기온이 올라가 전 지구적 강수량은 늘어났지만 건조한 지역은 더 건조해지고 있다. 고기압이 집중된 호주 같은 지역에서는 산불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10년 전 큰 산불이 난 뒤 산불이 나지 않아 ‘땔감’이 많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장기화된 호주 산불에 대한 우려는 국내에서도 번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프레이 포 호주’(#prayforaustralia), ‘프레이 포 레인’(#prayforrain) 등의 해시태그를 올리며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전하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oon)는 “불로 약화된 지반으로 인해 장마가 올 경우 홍수 피해가 더 심각해질 것이고, 기후 변화로 더 강한 사이클론과 장기 이상고온이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다른 이용자(***ism)는 “호주는 기후 변화에서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채식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환경단체들도 호주 산불을 심상치 않은 징후로 보고 있다. ‘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까지 8년도 안 남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서다.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기후위기로 인류에게 닥쳐올 미래를 호주가 보여주고 있다. ‘우리 집이 불탄다’는 그레타 툰베리의 비유가 더는 비유가 아닌 상황이 됐다”며 “호주 산불을 계기로 온실가스 감축에 손놓은 ‘기후악당’ 한국 정부의 책임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녹색당도 이날 성명을 내어 “호주 산불은 기후위기의 영향”이라며 “한국도 기후위기를 정책 최우선에 두고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이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제주도 낮 최고기온이 23.6도까지 올라가는 등 국내 날씨는 1923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따뜻한 1월을 기록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김유진 활동가는 “정부에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는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 3월과 5월에 기후위기 대책을 마련하라는 (학교) 결석시위도 기획 중”이라며 “생존은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미래가 달려 있으니 정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광준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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