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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고은영, 녹색으로 바위치기] 2019년의 온도

등록 2019-12-26 18:06수정 2019-12-27 02:06

고은영 ㅣ 녹색당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책위원장

꽤 좋아하는 도심 풍경이 있다. 해마다 이맘때 서울 광화문을 포함해 전국 광장에 설치되는 사랑의 온도탑이다. 한겨울에 부지런히 온도를 높이는 거대한 탑은 각자도생 사회를 비추는 등대의 모습, 따뜻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모습을 닮아 있다. 겨울에 모아진 성금은 1년간 수많은 사회복지사와 간사들의 손을 거쳐 국가가 챙기지 못한 곳으로 간다. 이번 겨울 온도탑은 지난달 30일부터 내년 1월31일까지 4257억원을 목표로 설치됐는데 성탄절을 기점으로 2128억원을 기록했단다. 수은주가 가장 빠르게 올라가야 할 시기를 거치고도 50도, 딱 절반만을 채운 셈이다. 관계자들에 의하면 예년에 비해 소액기부가 많이 줄었다며 경기침체로 소시민들의 기부 민심이 위축된 것이라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정치·사회가 불평등을 해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될수록, 수은주의 상승 속도는 점차 느려지고 있다.

얼마 전 그 광화문 사랑의 온도탑 앞에서 국가 기후위기 비상상황 선포와 기후변화 대응 실질적 예산 편성에 대해 촉구하는 연설회가 열렸다. 탈핵 촉구 기자회견을 끝낸 시민들, ‘기후위기 비상행동’ 토론회에 참석 예정인 시민들이 온도탑 앞에 모여 마이크를 나눠 가졌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칠레-마드리드 세계기후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지구 온도 상승을 막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선언문을 채택하는 총회인데, 스웨덴의 ‘기후정의 소녀’ 그레타 툰베리와 많은 청소년들과 기후정의 단체 활동가들이 총회 단상을 점거하다 쫓겨났고, 총회장 밖에서는 거대한 시민 행진이 이어진 날이었다. 올해 내내 서유럽과 인도, 중남미, 오스트레일리아 등 전세계에서 기상이변과 산불, 해수면 상승 등으로 사회적 약자 수천명이 사망했다. 세계 시민들이 더 격렬하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연설회에는 내년 출마를 앞둔 정당인들도 참여했다. 온도탑 앞 마이크를 나눠 든 시민들은 2020년 슈퍼예산과 석탄발전을 늘리는 에너지 정책, 도시개발 정책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지구 온도 상승 지표인 1.5도를 지킬 수 없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나라가 지구 온도 3도 이상 상승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며 성토했다. 이어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상실에도 묵묵히 식량자급을 책임지는 농민들, 야외 노동자들, 쪽방촌의 노인들, 수많은 건강 약자들이 결국 목숨을 잃거나 뜨거운 길 위에 나앉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또한 올해 지구 역사상 가장 빠르게 멸종하는 생물들이 발생하는 등 생태 시스템 붕괴가 이어지고 있는데, 예측 불가한 문명을 맞게 될 청소년 세대를 걱정했다.

지구 온도를 낮춰 생물종을 보호하고 인류를 돌보려는 정당인들의 그 마음이 2020년에 쓸 성금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캠페이너의 마음과 달랐을까? 2년 반 동안 보건복지 분야 종사자로 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회복지 서비스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안다. 2003년 프랑스를 덮친 폭염에 건강 약자 1만5천명이 사망한 뒤, 프랑스는 십수년간 도시 재난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2019년 같은 폭염 사태에서 그 10분의 1인 1500명만이 사망했는데 이렇듯 기후위기에 대비하는 것이 곧 우리의 소외된 이웃에게, 불평등에 시달리며 도움이 필요한 빈민과 건강 약자 모두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일이다. 위기를 막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고 돌봄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 말 도시계획을 포함한 기후 대응 전략인 ‘저탄소 장기발전전략’을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4월 총선을 거친 정치사회, 탄소 기득권이 그 계획 수립에 개입할 것이고, 그 전에 우리 모두는 주권자로서 총선에 개입할 수 있다. 모두의 생존을 위한 정치적 경로다. 당장의 돌봄이 필요한 이에게 작은 성금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기후행동을 약속하며 2019년을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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