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 명예교수 헨리 폰다로부터 시작하여 3대에 걸쳐 명배우를 탄생시켜 할리우드의 명가로 등극한 폰다 가문 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제인 폰다이다. 그 이유는 연기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아카데미상이나 에미상과 같은 영광을 여러 차례 누릴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거나 에어로빅 비디오를 만들어 전대미문의 판매고를 올렸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겪었던 시대의 부조리들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며 그에 대한 저항의 행동을 동시대인들에게 펼쳐놓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에 대한 격렬한 반대의 행위는 아버지 헨리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베트남에 곧 파견될 병사들과 인터뷰하며 그들이 느낀 공포감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전쟁에 반대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의 많은 행동가들이 베트남을 방문하여 전쟁의 참혹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 제인도 1972년 하노이에 방문하여 사진을 찍으며 병사들과 어울렸다. 그 과정에서 방공화포 위에 앉은 사진이 찍혔다. 그것이 많은 미국인들의 분노를 샀고 그리하여 그에게는 “하노이 제인”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이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 범위는 더 넓어졌다. 그는 미국 원주민들의 권리를 찾아주려는 운동에도 명분을 보탰다. 어렸을 적 성추행을 당했고 자라서는 상사의 동침 요구가 있었음을 고백하면서, 그 스스로도 모든 것이 여자들의 잘못이라는 통념에 물들어 있었지만 이제는 그에 맞서겠다며 여성운동에도 참여했다. 팔레스타인 전쟁도 중재하려 했고, 이라크 전쟁에도 반대했다. 오죽 눈엣가시였으면 소지하던 비타민 알약에 마약 혐의를 붙여 체포되었던 일도 있었다. 닉슨이 재임하던 백악관의 명령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는 툰베리를 비롯한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얻어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후 변화와 관련된 시위를 하다가 81살의 나이로 체포되었다. 인생은 길고 마음만 먹으면 할 일은 많다는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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