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이사
[이슈논쟁/서초동 촛불, 두 시선]
『14일 조국 법무부 장관이 취임 35일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조 장관은 이날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제목의 자료를 내 법무부 장관직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조국 사퇴’와 ‘조국 수호’ 진영 간의 팽팽한 대립도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두달여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조국 사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논쟁거리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한겨레>는 최근 주말마다 대규모로 열린 ‘서초동 촛불집회’에 대한 엇갈린 두 시선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검찰개혁 촉구’라는 구호 아래 모인 서초동 촛불은 2016년 광화문을 뒤덮었던 촛불과는 또다른 양상으로 나타났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여러 갈래로 표출됐기 때문이다. 아래에 2016 광화문 촛불집회에 이어 2019 서초동 촛불집회에도 참여한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이사와 이번 서초동 촛불집회에는 참여하지 않은 박권일 사회비평가의 견해를 나란히 싣는다.』
서초동 검찰청사 앞의 촛불집회가 지난 12일의 집회를 끝으로 일단락됐다. 약 2주 전 집회 공고를 소셜미디어에서 접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검찰을 규탄하는 집회가 계속 열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마 그 전에 알았더라도 동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검찰과 언론의 무차별적인 불법 의혹 제기가 충분한 근거를 갖고 진행된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단순히 특정 개인을 보호하거나 지지하기 위해 다시 광장에 나가는 일은 당시 나로선 생각하기 어려웠다.
광장에 나간 경험은 2002년 월드컵 응원 때를 제외하면 2016년 겨울 광화문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 참가가 있었다. 전자가 전 국민이 환희로 가득 찬 하나됨의 기쁨을 주었다면, 후자는 시민들의 결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슬픈 사건이었다. 그런 모임이 다시 있지 않기를 바랐고, 다시 생기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과 3년 만에 다시 광장으로 나서게 됐다. 그 이유를 굳이 한 단어로 짧게 표현한다면 ‘짜장면’ 때문인 것 같다. 그 작은 장면이 가슴속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짜장면’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설명하기에 앞서,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 내 입장을 먼저 밝히고 싶다. 사실, 나는 여러 의혹을 통해 드러난 조국 장관 가족의 면모에 호의적이지 않다. 정황상 딸의 입시 준비 행태는 딱히 불법을 동원할 근거나 동기가 보이진 않았으나 ‘꼼수’인 건 분명했다. 또 다른 의혹인 사모펀드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판단을 유보한다. 다만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주변 지인들한테서, 불법성이 있지는 않겠으나 아주 깔끔한 거래나 투자 행태로 볼 수도 없다는 견해를 들었다. 가족이 10억원 정도의 돈을 투자하는데 부부간에 상의도 없이 그만한 돈의 지출이 이루어졌다는 진술은 평범한 시민으로서 잘 이해가 가진 않는다. 상식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상세한 팩트를 알 수 없는 사안에서, 평범한 사람은 주변의 사례를 통해 유추하게 된다. 주변 학부모들을 보면 입시 스펙 준비를 둘러싸고 편법과 꼼수가 판친다. 재테크에 관해서도 편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온갖 작전이 이루어지고, 월급쟁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태에 동참한다. 어쩌면 덜 심각한 수준에서 그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조국이 성인군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실망과 우려의 마음은 든다.
혹자는 조국 장관이 ‘내로남불’ ‘위선’의 면모를 보인다고 흥분한다. 우리 모두가 완벽하지 않기에 함부로 ‘위선’이라는 말도 하고 싶진 않지만, 무엇에 대해 실망하고 우려하는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현 집권세력은 2016년 시민들의 촛불항쟁을 통해 ‘어부지리’로 권력을 얻었다. 그 전후로, 통치 역량을 검증받거나 지금껏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일부 집권세력 인사들의 언행을 접하면, 마치 자신들이 시대정신을 이끌어온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강남좌파’로 불리면서 그들만의 ‘스카이 캐슬’에 안주해온 사람들이, 나라 곳곳에 소외된 국민들의 처지를 들여다보면서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똑똑하게 정립하고 이끌고자 하는 의지와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혹여 조국 장관도 그런 부류 중 하나라면, 놀랍지는 않겠으나 실망과 우려는 든다. 개인에 대해 무결점의 도덕성을 기대해서 오는 실망과 우려가 아니다. 행여 담론과 이미지의 거품 속에, 본인도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오만한 ‘무성찰성’으로 국가를 무능한 파국으로 끌고 갈까 두렵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두 가지 다른 상식의 도전을 느낀다. 정의를 외치면서 자신을 못 돌아보는 사람들과, 그들보다 훨씬 더 부패했으면서 마음에 안 든다고 작은 허물을 침소봉대하여 인격살인을 하려는 세력들을 본다. 무능한 권력의 공백이 더 사악한 권력으로 채워지면서 국가와 사회가 병들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다. 검찰은, 조직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공적인 권능과 네트워크를 어떤 식으로 사유화해서 시민 개인을 겁박할 수 있는지를 또렷하게 보여줬다. 고작 표창장의 위조 여부를 밝히기 위해 다수의 검사가 일가족의 작은 집을 11시간 동안이나 압수수색하고, 집안에 눌어붙어 짜장면이나 시켜 먹던 행태에서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가가 위임한 법 집행 이외의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방식이 영화에서나 봤던 조폭을 꼭 빼닮았다.
혹자는 이 모든 일이 조국이 공직자이기에 더욱 폭넓게 감내해야 할 상황이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과 원칙의 엄정함은 그 대상과 집행의 범위가 적정하고 일관될 때만 지켜질 수 있다. 평범한 시민의 눈에, 검찰의 거만하고 위압적인 행태는 다분히 언론플레이를 염두에 둔, 법 윤리의 테두리를 벗어난 부패한 정치행위로 읽힌다. ‘조국 지지’는 몰라도 ‘내가 조국이다(같은 꼴이 날 수도 있다)’라는 메시지는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서로 상충하는 상식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순위에서 더 중요한 인권의 가치부터 지키기 위한 실천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서초동의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으로 나간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러나 지킬 것부터 지키면서 변화의 단초를 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두 가지 다른 상식의 도전을 느낀다. 정의를 외치면서 자신을 못 돌아보는 사람들과, 그들보다 훨씬 더 부패했으면서 마음에 안 든다고 작은 허물을 침소봉대하여 인격살인을 하려는 세력들을 본다. 무능한 권력의 공백이 더 사악한 권력으로 채워지면서 국가와 사회가 병들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