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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권력 다툼의 여파

등록 2019-09-19 17:47수정 2019-09-19 19:24

조한욱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영국 국민이 된 문호 엘리엇의 희곡 <대성당의 살인>은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베켓이 1170년 영국 국왕 헨리 2세의 기사들 네명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다룬다. 그 배경에는 성직자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려던 국왕의 시도가 있었다.

12세기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재판에는 세속계의 치안판사와 종교계의 주교가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1164년 헨리 2세가 클래런던 헌장을 발표하여 성직자의 권한을 크게 축소시키려 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중죄를 저지른 성직자를 세속 법정에서 재판해 세속의 처벌을 받게 한 것이다. 성직자 대다수가 그 헌장을 받아들였지만 베켓은 끝내 반대했고 탄압을 피해 유럽 대륙으로 도피했다. 숨어 있던 시토 수도원에도 압력이 가해지자 베켓은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헨리 2세의 복심을 읽은 기사 자객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최대의 적이 사라졌으니 왕권 강화는 손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역사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민심은 오히려 국왕에게 적대적인 방향으로 흘렀고, 따라서 그는 타협의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대역죄가 아닌 이상 성직자에 대한 재판은 교회재판소에 맡겨져야 한다는 절충안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성직의 특혜”가 나타나게 된 개략적인 전말이다.

그렇지만 “성직의 특혜”에는 또 다른 반전이 따랐는데, 그 내용은 소극에 가까웠다. 처음에 “성직의 특혜”를 탄원하려는 사람은 성직자의 법복을 입고 삭발을 한 뒤 법정에 출두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라틴어 성서의 독해능력을 보이면 되는 문해력 테스트로 바뀐 것이다. 그것은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성직의 특혜”를 신청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그 뒤에는 <시편>의 한 구절을 암송하면 될 정도로 간편화되어 글을 모르는 비성직자라도 그 구절만 암송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제도는 1827년에야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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