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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조국 정국’ 독해법

등록 2019-08-22 17:50수정 2019-08-23 09:29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조국 정국’이 심상치 않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태풍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에서 조 후보자가 지니는 상징성이 큰 탓에 핵심 지지층의 충격도 큰 듯하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정국 주도권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보수우익 진영의 위기감은 상당했다. 한-일 갈등으로 빚어진 애국주의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은 친일 프레임의 덫에 갇혔고 지지도는 하락했다. 반일 애국주의 흐름에 진보는 물론 보수유권자들도 동조하면서 자유한국당은 존재감을 상실해갔다.

역대 정부에서도 독도 문제 등 한-일 갈등이 부각될 때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통합의 흐름이 형성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한국리서치가 8월16일 발표한 조사에서 올해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기대감(44%)이 부정 여론(42%)을 앞질렀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일제히 상승했다.

이 와중에 역시나 자유한국당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정부의 자작극’ 등의 막말이 잇달았고 친일 프레임을 자초했다. 국가적 단합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일본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운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반아베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의 고립은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조 후보자 의혹은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호재다. 조국 낙마는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주고 사법개혁의 흐름도 끊어낼 카드다. 친일 프레임을 좌파 폭정 프레임으로 전환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내친김에 내년 총선 승리도 노려볼 수 있다. 임기 후반기 레임덕을 틈타 차기 집권도 기대해볼 수 있다.

조국이라는 인물이 지닌 상징성이 큰 탓에 사태의 파장도 크다. 그는 진보적이면서 도덕적인 86세대, 세련되면서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강남 좌파를 상징한다. 셀럽이자 문화권력의 핵심으로서 청년세대에게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권위적이고 고집불통인 보수의 꼰대성과 대척점에 서 있던 인물이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우익진영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중에서도 딸 교육 문제는 우리 사회의 ‘뇌관’을 건드렸다. 장학금 의혹, 2주 고교생 인턴으로 의학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된 것, 무시험으로 대학과 의전원에 입학한 것 등을 접한 서민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은 크다. 불법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재력과 네트워크라는 합법적 틀 위에 이루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경쟁 속에서 나고 자란 청년세대에게 공정함의 요체는 경쟁 규칙의 공정함이다. 이들이 대학 입학, 채용 과정에서 유독 시험을 중시하는 이유다. 여론조사 기관들에 따르면 조 후보자 지명에 대해 60대와 함께 20대에서 부정적 여론이 유독 높다. 딸 의혹이 확산되면서 20대의 반감은 더 커질 공산이 높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의 저자 앨버트 허시먼은 허무주의가 보수의 지배전략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바꾸려고 노력해봐야 소용없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다”는 걸 강조하는 전략이다. 공정성에 민감하고 변화를 갈망해온 청년세대, 그리고 시민들에게서 허무주의가 커질수록 정치불신은 높아지고 보수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도 확장된다.

사안의 성격상 이번 사태의 파장은 정치를 넘어 사회·문화 등 여러 영역으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보수정치세력과 보수언론은 일제히 진보의 이중성과 위선을 비판하고 나섰다. 86세대의 기득권화를 공격하면서 청년세대의 반감을 부추기고 있다. 보수우익세력에게 이번 사태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 한명을 낙마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들이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퇴양난에 처한 문재인 정부의 탈출구는 무엇일까? 상식에 비춰보면 된다. 학위 논문도 지도교수가 공저자로 이름을 얹으면 대중의 비판을 받는 세상이다. 하물며 2주 고교생 인턴이 제1저자라면 납득할 사람이 몇일까? 보수우익의 허물을 들어 진영논리를 들이댈 사안이 아니다. 우리 편을 지켜야 한다는 진영논리는 당장은 솔깃해도 미래를 위협하는 독이 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타격은 불가피하다. 청문회에서 밝히되 뼈아픈 성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디 가래가 아니라 호미로 막길 바란다.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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