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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겸허한 노대가

등록 2019-08-08 18:13수정 2019-08-08 19:31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실증주의가 강력하게 대두되며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학까지도 과학화되어야 한다는 물결이 크게 일었다. 이에 대응하여 독일에서 일어난 반발이 역사주의였다. 역사주의라고 하지만 이 학문적 경향을 주도했던 인물들은 이른바 ‘신칸트학파’에 속하는 철학자들이었다. 그 핵심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를 중심으로 서남독일학파를 창시했던 빌헬름 빈델반트가 있었다. 그는 자연과학의 방법이 “법칙정의적”이라면 역사학의 방법은 “개별기술적”이라 하여 그 방법에 차이가 있음을 논증했다.

빈델반트는 스트라스부르대학교의 총장까지 지냈는데, 그의 제자 하인리히 리케르트는 자연과학과 역사학의 차이가 문화적 가치와의 관련성에 있다고 논하며 자연과학과 문화과학을 구분하였다. 그 문화과학의 대표적인 학문이 역사학으로서, 이들이 밝힌 역사학의 목적이나 대상이나 방법론은 지금까지도 큰 힘을 발휘하며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

1893년 빈델반트가 두권으로 방대하게 집필한 <철학사>를 발간했다. 이탈리아의 역사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가 그 책에 대해 서평을 썼다. 거기에서 그는 이 책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잠바티스타 비코의 저작에 대한 언급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음은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빈델반트는 그 비판의 중요성을 즉각 인정했다. 그리하여 1901년에 나온 재판본에서는 비코를 다룬 부분을 추가하였던 것이다. 이 노대가의 겸허함에 감복한 크로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1911년에 <비코의 철학>이라는 책을 내면서 그것을 빈델반트에게 헌정하였다.

이것은 철학의 역사에서 회자되는 미담에 그치지 않는다. 벨기에 출신의 저명한 사상사가 폴 아자르는 <유럽 의식의 위기>라는 저서에서 비코가 만일 자신의 시대에 유럽에서 독자층을 확보했더라면 유럽의 사상 자체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크로체는 노대가에게 감사하며 뒤늦게나마 유럽의 사상이 흘러갈 방향을 바꾸는 데 자신의 힘을 보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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