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나는 이탈리아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확대시킨 저서 <베난단티>를 2004년에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그때의 ‘옮긴이의 말’을 기억하는 분들은 실바나 파트리아르카라는 이름을 어렴풋이 떠올릴지 모르겠다. 토리노에서 석사 학위를 위해 텍사스로 유학을 온 그와 함께 수업을 들었던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뛰어난 실력과 논리로 수업을 압도했던 그에게 이탈리아 학자를 연구하겠다는 내가 특이하게 비쳤는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라는 의미까지 곁들여 내게 건네줬던 책이 <베난단티>였던 것이다. 그 내막을 책에서 읽은 몹쓸 사람들마다 내게 물어본 것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실바나와의 관계였다. 그 학기에 석사 학위를 마친 그는 박사 학위를 위해 존스홉킨스대학교로 갔다는 것이 내 기억의 끝이었다. 퇴임이 임박하니 옛 생각이 절로 나면서 실바나까지 회상이 이어졌다. 당시로서도 뛰어난 학자의 능력을 가졌던 그라면 무엇을 하더라도 큰일을 할 것 같아 검색을 해봤더니 제수이트 교단에서 뉴욕에 설립한 포덤대학교 사학과의 교수로 있다. 그런데 집필한 저서와 논문과 서평과 백과사전 기고 목록이 에이(A)4 용지로 열다섯 페이지가 넘게 빼곡하다. 학문의 세계에서 양으로 판가름하려는 것은 잘못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의 엄청난 양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방대한 연구 영역이 상상을 초월한다. 무솔리니 체제를 포함한 이탈리아 현대사, 민족주의, 젠더의 역사, 인종주의의 역사, 역사통계 방법론, 사회과학의 역사 등에 걸쳐 괄목할 만한 저서를 산출했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여러 대학교와 연구소에서 초빙 강연회와 세미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유튜브의 강연을 들었다. 예전과 다름없이 비판적인 안목으로 아프리카 출신 연합군 병사들과 이탈리아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난 “갈색 아기들”을 논하며 가톨릭 국가에서 무솔리니 이래 지속되는 인종차별과 여성차별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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