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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문고본의 추억

등록 2019-07-18 17:46수정 2019-07-19 14:36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문고본 전성시절이 있었다. 연배가 웬만큼 되는 책벌레들은 그 시절을 그리며 그 작은 책들이 자아의 형성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더듬는다. 문학의 향취를 맡으려거나 지식에 대한 욕구를 채우려거나 주머니가 가벼운 청소년에게 양장본이 버거웠을 때 문고본은 돌파구였다. 특히 내게는 문예문고, 서문문고, 삼중당문고의 소책자들이 세계의 문호들을 접하는 통로였다. 주말이면 추리소설 몇권을 내리 읽으며 책이 끝나는 것을 서러워하곤 했다. 국내의 필자들을 발굴하여 펴내던 책세상의 ‘우리 시대’ 총서는 문고본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줬지만, 근자에 더 이상 새 책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서양에서는 1935년에 설립된 펭귄북스에서 저렴한 문고본 책들을 출판함으로써 문화 창달에 큰 몫을 했다. 창립자 앨런 레인은 친구 애거사 크리스티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서점에서 책들이 품질은 조악하면서도 값은 비싸게 책정된 것을 보고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펭귄은 이제는 랜덤하우스에 병합됐다. 여기에서 나오는 책들이 문학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압도적으로 문학 방면에 치중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방면의 지적 욕구를 채워줄 문고본은 없을까? 있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나온 ‘아주 짧은 입문서’ 총서가 그것이다. 1995년에 출범하여 초기에는 옥스퍼드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책들을 재간행하기도 했지만, 이제 총권 600권을 넘어 발간했으니 매해 20개 정도의 주제를 다뤄온 것이다. 학문 분야, 철학자, 과학 이론, 종교, 정치제도, 역사 등등 수많은 주제에 대해 명성이 자자한 전문가들이 균형 잡힌 지식을 전달한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근거가 불투명한 지식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국내의 출판사에서 ‘첫 단추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하며 고투하고 있다. 큰 관심이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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