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그날 판문점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도 놀라고 땅도 뒤흔들릴 대사변이었다.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적국에 들어갔다. 그의 무도한 ‘도발’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민군은 ‘원쑤의 수괴’를 향해 발포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를 웃으며 반갑게 맞았다. 이어서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한국에 들어왔다. 역시 이때도 군사적 응징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을 미소로 환영했을 뿐이다. 전쟁 상태인 적국의 정상들이 전쟁의 최첨단인 전선을 넘나들어도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 그것이 핵심이었다. 전쟁 상태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고, 분계선도 사람이 그어 놓은 것이다. 적대관계를 무너뜨리고, 서로를 가르는 선을 지우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우리가 행동하면 전쟁도 평화로 전변시킬 수 있다는 벅찬 가능성이 현실임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푸른 하늘을 본 것은 잠깐이었다. 푸른 하늘이 일상이 되려면 장마 구름이 걷혀야 하고 미세먼지를 거둬들여야 한다. 정상 사이의 관계가 변하면 그 아래에서도 변해야 한다. 국가 사이의 관계가 변하면 국내 정치도 변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이 연출한 판문점의 푸른 하늘이 한반도 모두의 푸른 하늘이 될 수 있다. 그래야 동북아가 쾌청해질 것이다. 정상이 만나고 사람이 움직여야 세상이 변한다. 외교와 국내 정치는 뗄 수 없는 사이다. 서로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관계다. 사회적 자본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이 이를 ‘양면게임이론’으로 정식화했다. 즉 국가 간 합의를 위한 협상이 있다면, 국가 간 합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두고 국가 구성원들 사이의 협상이 있다는 것이다. 외교가 국왕이나 외교관과 같은 소수 엘리트의 독점물이 아닌 민주화 시대에 양면게임은 당연한 현상이다. 퍼트넘의 탁월함은 양면게임에서 ‘반향효과’를 본 점에 있다. 퍼트넘은 헬무트 슈미트 총리 대리인으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준비했던 디터 히스를 인용해 이를 설명한다. “국가이익의 정의 자체가 정상회담을 통해 변할 수 있다.” 국가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악수와 미소로 환영한다면 정부도 바뀌어야 한다. 정책도 새로워져야 한다. 군사분계선을 두고 갈라져 있는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변하고 있는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 지 1년이 넘었지만 미 국무부는 과거의 대북정책을 되풀이하고 있고 미 재무부는 미국의 독자제재를 오히려 강화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안전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지만 미 국방부가 이런 조치를 취했다는 조짐은 없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미국 정보기구들은 “북한이 핵무기와 생산시설 모두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히려 정상 합의를 의심한다.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와 국방전략 보고서는 정상회담 이전에 발표된 것이라고 해도, 정상회담 1주년이 거의 다 돼서 미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조차 구태의연하다. 과거와 같이 북을 ‘악당국가’로 적시하고 안보위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정상은 평화체제와 새로운 관계를 약속했지만 보고서는 “유엔군사령부를 재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천명한다. 이것이 “1953년 정전협정의 감독과 유지를 통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고 한다. 미국 정상은 전선을 넘나들었고 북의 ‘국가 대표’와 손을 맞잡았지만 미 행정부 모든 부서는 전선에서 대치를 강화하고 있다. 새로운 관계의 전망은 그 어느 부처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상회담의 반향효과는 없다. 정상 사이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국가이익을 새롭게 정의하지 못한다면, 정상이 평화체제 구축을 약속했는데도 정부 기구들이 정전체제에 집착하고 있다면 판문점 회동은 정상의 회동이 아니었다. 리얼리티 쇼였을 뿐이다. 해서 실무협상을 주목한다. 실무 담당자는 감히 국익의 재정의를 논할 수 있을까. 국무부와 국방부, 재무부 등 미국 정부 관계부처 전체를 조정하고 이끌 권한이 부여될 것인가. 새로운 관계를 전망하고 평화체제의 구축에 나설 수 있는 만큼만 한반도의 비핵화도 진전될 것이다. 그날 우리가 판문점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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