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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지식의 심연

등록 2019-07-11 18:05수정 2019-07-11 19:10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908년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주의 유대인 학자 집안에서 아르날도 모밀리아노가 태어났다. 그는 이른 학문적 성공을 거두어 스물여덟의 나이로 토리노대학교의 로마사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유대인을 차별하는 법을 입안함으로써 그는 2년 만에 사임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나야 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실지로 그의 부모들은 그렇게 최후를 맞았다.

안정된 학자로서 고향의 삶을 뒤로한 그에게는 극심한 곤궁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더라도 보석은 스스로 빛을 발한다. 2차대전이 끝난 뒤 토리노대학은 물론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가 설립한 역사 연구소의 청을 받아 잠시 머물렀다. 그러나 1951년 모밀리아노가 결국 안착한 곳은 런던대학교였다. 이후에도 그는 시카고대학교와 피사고등사범학교에 정규적으로 출강함으로써 국제적인 학문의 교류에 큰 몫을 하였다.

이미 20대 초반부터 이탈리아 백과사전에, 30대 이후로는 옥스퍼드 고전 사전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인물들에 대한 전기를 기고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의 전공 분야는 사학사이다. 그것은 웬만한 사학사가 아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기 어려운 사실들을 그는 마치 익숙한 서랍 속에서 낯익은 물건을 꺼내듯 툭 던져놓고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린다.

특히 로마를 비롯한 서양의 고대 역사가들을 다룬 논문이 뛰어나지만 에드워드 기번을 비롯한 근대의 역사가들과 잠바티스타 비코와 같은 역사철학자들을 다룬 글들도 경탄을 자아낸다. 문학과 법학의 이론까지도 세세하게 꿰뚫고 있어 유수의 법학자까지도 그의 제자였음을 자랑하고 있다. 지식의 심연이라는 것이 있다는 가정 아래 그의 글을 보면 그곳에 도달한 사람의 심원하고 육중한 지혜가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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