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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부자와 빈자(1)

등록 2019-06-20 16:09수정 2019-06-20 19:19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누가복음에는 부자와 빈자의 운명이 현생과 내세에서 극명하게 뒤바뀐 것을 보여주는 우화가 있다. 비싼 자주색 옷을 입고 매일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는 부자가 있다. 그의 이름을 디베스라 칭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말은 “부자”를 뜻하는 라틴어일 뿐이다. 그의 집 앞에 쓰러져 누워 있는 거지는 나사로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나사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데, 지나가던 개마저 그의 상처를 핥아준다.

거지가 죽자 천사가 그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 아브라함의 곁에 두었다. 부자는 죽은 뒤 땅에 묻혔는데, 고통을 받던 지옥에서 하늘을 우러르니 나사로가 아브라함 옆에 앉아 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탄원한다. “나사로의 손에 물을 묻혀 내 목을 적셔주세요. 지옥불이 너무도 고통스러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냉정하게 거절한다. 지상에서 온갖 좋은 것을 누렸던 그는 이제 고통을 받아야 하며,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부자는 나사로를 세상에 보내 아직 살아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 회개하도록 일러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것마저 거절당한다.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들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뒤 이 이야기는 서양에서 가장 즐겨 예증되는 우화가 되었다. 중세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화가들이 이 소재를 다루어 여러 기도서에 이 내용을 묘사한 삽화가 실렸고, 성당이나 수도원의 벽화도 이 이야기의 교훈을 전한다. 나사로는 나병 환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고,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은 나사로 수도회를 창설하기도 했다.

초서,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토머스 엘리엇 같은 문학자들도 이 소재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이 이야기는 민속 음악에도 스며들어 민요로 정착했고, 그 뒤엔 본 윌리엄스 같은 음악가들이 민요의 주제를 바탕으로 오라토리오를 만들었다. 2016년에 나온 데이비드 보위의 마지막 싱글 앨범의 제목이 <나사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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