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9일 발사한 미사일 사진. 미사일이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을 때 연결고리가 떨어져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연합뉴스
중국 고전 한비자에 나오는 얘기다. 초나라에서 무기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자기의 무기들을 자랑했다. “내 방패는 견고해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이것을 뚫을 수 없습니다.” 창을 들어 보이며 구경꾼들에게 자랑했다. “내 창은 날카로워서 세상에 뚫을 수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구경꾼들 중 한 명이 물었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 논리적으로 비일관적인 관계를 말하는 ‘모순’(창과 방패)이라는 말은 이렇게 생겨났다.
21세기 한반도에서도 창과 방패의 논란이 뜨겁다. 북이 지난 4일과 9일 각각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 뒤 더 뜨거워졌다. 한국 정부는 아직까지도 그 ‘발사체’의 제원을 분석중이라고 하지만 세론은 이미 미사일이라고 보고 있다. 안보 전문가들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이것이 러시아제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같은 계열이라고 한다. 이 미사일은 비행고도도 낮고 비행궤도도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방어체계로 맞혀 떨어뜨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난리다. 북의 ‘창’이 한국의 ‘방패’를 뚫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안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최첨단 미사일방어체계를 들여와도 거리가 짧고 지형과 기후가 복잡한 한반도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은 옛날부터 있었다. 북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장사포 앞에서 이 첨단무기들은 고철에 불과하다. 이런 쓸모없는 고철을 운용하는 미사일방어부대는 북의 좋은 먹잇감 신세다. 북이 이번에 선보인 ‘발사체’는 위기 시 이 미사일방어체계를 우선적으로 공격해 파괴할 터이니. 게다가 4월 중순 주한미군은 평택에서 사드 전개훈련을 실시하여 북이 ‘발사체’ 훈련을 할 좋은 구실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지 않는가. 이런 무기체계를 한국에 들여올 필요가 있는가?
하지만 한국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 해군은 작년 12월 SM-2 미사일 구입을 결정한 데 이어 지난 17일 미국 국무부의 승인을 받았다. 3억달러가 넘는 구매다. 함대공 미사일이자 순항미사일 요격 능력이 향상된 미사일 방어용이기도 하다. 작년 9월에는 패트리엇 미사일 64기를 5억100만달러에 구매할 것을 승인받았다. 선제타격, 요격, 보복응징을 위한 3축체계는 이름만 바꿔 추진하고 있다.
미사일방어체계를 겹겹이 구축해야 한국이 안전하다는 주장은 나무만을 보고 숲을 보지 않는 것이다. 북의 미사일만을 보고 한반도의 전략균형에는 눈을 감은 것이다. 전략균형의 추는 이미 한국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대한민국의 국방비가 북의 국내총생산(GDP)을 뛰어넘은 것은 오래전이다. 북이 경제활동을 100퍼센트 국방에 ‘몰빵’해도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다. 북은 핵탄두 20여발을 가지고 있다고 큰소리치지만 미국의 핵탄두 4천여발에 비교하기도 민망하다. 그런데도 한국은 올해 국방예산을 지난해보다 8.2% 늘렸다. 46조원이 넘는다.
바로 이런 전략적 불균형이 북을 ‘창’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위기에 몰린 북이 핵무기를 만들고 새로운 ‘발사체’를 개발했다고 해서 전략적 불균형이 깨지거나 한국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 군비를 확장하고 ‘방패’를 늘리니 북은 ‘창’을 더 많이 만들거나 새로운 ‘창’을 개발하게 된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인도적 지원으로 800만달러를 공여하기로 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북과 싸우기 위해서 쓰고 있는 액수는 계속 늘고 있다.
다시 한비자 얘기로 돌아가자. 그 저자로 알려진 한비(韓非)는 왜 이 얘기를 굳이 기록에 남겼을까? 춘추전국시대 중인 기원전 3세기께의 기록이다. 주나라 왕실이 약화되어 중국 각지에서 군웅이 군대를 키우고 서로 싸우고 있었다. 천하를 제압할 절대무기가 있다고 떠벌리는 장사치들이 활개를 치고 그들의 세 치 혀에 사람들이 휘둘릴 수 있는 혼돈의 시대였다. 한비에게 있어 ‘모순’은 추상적인 논리학의 문제였다기보다는 이 시대 혼돈의 근원을 묻는 화두였다. 결코 뚫리지 않는 방패와 모든 것을 뚫는 창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도 없지만, 그런 무기만을 추구하는 세상이 결코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 한비는 저잣거리에서 질문을 던진 구경꾼을 빌려 세상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가 질문을 던진 지 2400여년이 지났다. 혼돈은 여전하다. ‘창’과 ‘방패’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려는 자들도 여전하다. 그들의 모순을 저잣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지적할 ‘구경꾼’은 있는가. 우리는 한비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있는가. 남과 북이 창과 방패에만 매달리는 한 한반도 평화는 요원하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