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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동성애자 국민과 함께 살아가기

등록 2019-05-16 16:12수정 2019-05-17 14:14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누군가 태어납니다. 부모가 한국 국적이면 갓난아기일지라도 자동으로 국적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됩니다. 1968년에 간첩이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한 사건이 있은 후에 국민과 간첩(비국민)을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졌죠. 얼굴 사진이 들어간 주민등록증은 만 17살이 되면 발급되고, 만 18살이 되면 혼인신고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며, 만 19살이 되면 선거권이 부여됩니다. 이렇듯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은 법률로 정해놓았습니다.

대한민국에 여자란 XX 염색체와 자궁이 있어야 하며 남자는 XY 염색체, 음경과 고환을 가져야만 한다고 정한 법률은 없습니다. 여자 국민과 남자 국민은 반드시 서로 연애하고 결혼해야 한다는 법 역시 없습니다. 이것은 법이 규제할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헌법 10조는 이렇게 명시합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우리 모두는 인간으로 태어났고, 국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이 의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모든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합니다.

저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자라났고, 제 삶에 책임을 지려 노력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저는 제 부모와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이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와 함께 지내며 어떤 인생의 꿈이 있었는지, 때론 버겁고 때론 구질구질하기도 한 일상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하며 지내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지인들이 이성애자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이성애자라고 부르고, 왜 이성애자로 태어났는지 답을 요구하며, 이성애자로서의 삶을 비하하거나 가치 평가를 내린 적은 없습니다. 저의 지인뿐만 아니라 한번도 얼굴 본 적 없는 낯선 타인이라고 할지라도 이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아닌지, 국민이 아닌지 의심해본 적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이성애자들은 이런 한 톨의 의심도 받지 않는 삶을 자연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동성애자로서 질문합니다. 왜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동성애자의 삶은 존중하지 않습니까?

동성애가 못마땅한 분들은 ‘피땀 흘려 세운 나라 동성애로 무너진다’는 구호를 자주 외칩니다. 이 구호가 성립하려면 몇가지가 더 설명되어야 합니다. 피땀 흘려 나라를 세운 사람들 중에는 동성애자가 한명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하고, 한 나라가 동성애 정도로 무너진다면 이성애는 과연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해명이 필요합니다. 이것에 답하지 못하면서 나라가 망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것이 혐오입니다. 내 눈 앞의 사람이 인간이 아니라 괴물로, 악마로 보이고, 그래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짓고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혐오가 만들어내는 비극이기도 하고, 또한 혐오를 활용한 정치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혐오를 통해 이익을 얻는다는 의미입니다. 혹시 지금 누군가를 혐오하여 얻는 개인적 이익이 있으신가요? 만약 없다면 굳이 혐오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뜻도 됩니다.

확실한 것은 그 어떤 사람도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를 가진 채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안의 혐오는 모두 학습의 결과입니다. 부지불식간에 원하지 않았지만 습득하게 된 혐오는 일부러 노력을 해야만 없어집니다. 이 노력은 나와 함께 태어난 생명들에 대한 예의입니다.

5월17일 금요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입니다. 5월31일에는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핑크닷’이, 6월1일에는 20회를 맞이하는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서울광장에서 열립니다. 인간, 국민, 헌법의 가치를 질문하고 지키고 싶다면 이 행사들 중 하나에 한번은 참여하길 권합니다. 평등을 향하는,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한 도전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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