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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큐의 잊힌 여왕

등록 2019-05-16 16:12수정 2019-05-16 19:16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런던 근교의 큐 식물원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보유한 식물의 종도 가장 다양하여 명성 높다. 그곳에는 미술관도 함께 있다. 식물원 옆 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평생 식물의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기증했고, 그것을 받아들인 식물원에서 전시 공간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화가가 메리앤 노스였다. 유명한 성악가 샬럿 헬렌 돌비에게 레슨을 받으며 성악가를 꿈꿨던 노스는 성량이 줄어들자 그 길을 포기하고 꽃을 그리는 일에 전념했다.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는 여행을 좋아해 딸들을 데리고 다녔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여행 빈도가 높아졌다. 여동생이 결혼하고 아버지가 낙선한 뒤에는 부녀의 여행이 일상이 되었다. 스위스와 시리아와 이집트 등 19세기에 여성으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외국 여행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알프스 여행에서 병을 얻은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불귀의 객이 되었다. 슬픔을 달래기 위해 더욱 그림에 몰두했다. 그것을 넘어 먼 나라의 식물들을 그리겠다는 어렸을 적부터의 꿈을 실행에 옮겼다. 시칠리아, 캐나다, 미국, 자메이카를 여행했고, 브라질에서는 깊은 밀림 속에 오두막을 짓고 1년 동안 기거했다. 카나리아제도에 있는 섬에서 몇달을 보낸 뒤 세계일주를 시도했다. 그렇게 일본, 보르네오, 자바, 실론, 인도를 돌아다녔다. 물론 그림을 그리며.

귀국 후 전시회를 열었고, 그것이 큐 식물원에 그의 상설 전시장이 열린 계기가 되었다. 관객 중에 찰스 다윈이 있었다. 다윈은 노스에게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을 제안했고, 노스는 거기에 더해 뉴질랜드까지 여행하며 유럽에 소개되지 않았던 관목을 다윈에게 선물했다. 사진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그가 그린 세밀하고 정확한 그림은 생물학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어, 식물의 여러 종뿐만 아니라 식물군을 가리키는 속 하나에도 그의 이름이 붙었다.

영국의 공영방송에서는 그가 잊힐까봐 ‘큐의 잊힌 여왕’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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