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바이오로직스, 제일모직, 이재용(그래픽 김지야)
지난 26일,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에서 8조원짜리 ‘희소식’이 전해졌다. 삼성에피스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류머티즘성 관절염 등에 쓰이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인 에티코보의 판매 허가를 얻어냈다는 소식이다. 에티코보는 미국 제약회사가 개발한 엔브렐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인데, 엔브렐은 지난해 전세계에서 무려 8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시점이 공교롭다. 하루 전인 25일, 검찰은 삼성에피스 임직원 2명에 대해 증거위조와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와 미국 제약회사 바이오젠의 합작사인 삼성에피스는 이른바 ‘삼바 분식회계’ 의혹의 중심에 있다. 금융당국은 2015년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삼성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처리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4조5천억원대의 평가이익을 얻었다고 결론 냈다.
증거인멸에 나선 삼성에피스 임직원들은 이상할 정도로 과감했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직원들의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까지 일일이 조사했다. JY(이재용), 합병 등 이 사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지뢰’가 들어간 문건과 보고서를 찾아내 폐기했다. 이들은 직속 상사인 삼성에피스 사장의 스마트폰까지 들여다봤다고 한다. 윗선의 의중이 실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이들의 증거인멸에 삼성그룹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 쪽 임원이 관여한 정황도 있다. 법원은 삼성에피스 임직원들의 구속영장을 모두 발부했다.
국내 굴지 회계법인의 회계사들도 과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금융당국은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젠과 맺은 콜옵션 약정을 2012년부터 일부러 숨겨왔다고 판단했다. 삼성바이오는 “회계법인들과 논의해 결정한 것”이라며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삼성바이오의 회계감사와 기업가치 평가 등을 맡았던 회계사들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사실 우리도 콜옵션 약정 내용을 몰랐다. 삼성과 입을 맞춰 아는 척을 했다”며 거짓말을 시인했다.
회사의 과감성은 한발 더 나아간다. 금융당국이 삼성바이오의 회계사기 의혹을 들여다보던 지난해, 삼성바이오는 삼성에피스의 회계처리를 갑자기 변경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5년 말 삼성에피스가 바이오시밀러 제품의 (유럽 등의) 판매승인을 획득하면서 기업가치가 급등해 이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이후 <한겨레> 보도 등으로 드러난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의 ‘설명’은 전혀 다르다. 2015년 11월 작성된 문건에는 삼성바이오와 회계법인들이 자본잠식 위기에 빠진 삼성바이오를 구하기 위해 갖가지 대책을 세운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 문건에는 ‘바이오시밀러 판매승인’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회계처리 기준을 바꾸기 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는 다급한 주문이 있을 뿐이다. 내부 문건 내용만 보면 ‘바이오시밀러 판매승인’은 회계처리 기준 변경을 위해 ‘동원된 이벤트’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삼바’는 지금도 내부 문건이 ‘중요하지 않다’고 애써 부인한다.
직원이 사장의 휴대폰을 뒤지고, 굴지 회계법인의 회계사들이 거짓말을 하고, 회사가 내부 문건을 부정하면서까지 ‘분식회계는 없었다’고 강변하는 이유는 무얼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 청탁 명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경영권 승계 청탁 현안은 없었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청탁을 인정했다. 두 사건을 함께 심리하는 대법원은 삼성바이오 수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검찰은 2016~17년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부터 이 내용을 들여다봤다. 참고서를 책상 한쪽에 올려놓고 시험을 치는 ‘오픈북 테스트’인 셈이다. 묘하게 모든 이야기가 ‘경영권 승계’ 챕터로 연결된다. 낙제할 수 없는 수사다.
임재우
법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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