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내 나이가 어때서

등록 2019-04-25 15:44수정 2019-04-25 19:27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지난해 작고한 영국 시인 제니 조지프의 <경고>는 아주 특이하게 애호받는 시가 되었다. 그 시는 시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던 1960년에 발표된 뒤 수십년이 되도록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부인 레이디 버드를 비롯한 사람들의 눈에 띄면서 급기야 1996년 영국 공영방송의 설문조사에서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2차대전 이후의 시로 선정되었던 것이다. 결혼식과 장례식처럼 상반되는 의례에서 그 시가 빈번하게 낭송되었던 이유는 그 시의 메시지에 있었다.

“늙은 여인이 되면 나는 자주색 옷을 입고/ 어울리지 않는 빨간 모자를 쓸 것이오./ 연금은 브랜디와 여름 장갑과 비단 샌들에 써버리고/ 버터 살 돈은 없다고 할 것이오.” 늙는다는 것은 맞서 대항해야 할 과정이라는 시인의 주장에 특히 여성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다른 영국 시인 위스턴 오든은 “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게 하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이 시는 그렇지 않았다. 조지프 스스로가 의아해할 정도의 성공을 거두며 낭송회에 불려 나갈 때마다 자전적인 시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시에 쓴 일들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시의 내용을 행동에 옮긴 사람들이 있었다. 1997년 가을, 미국 화가 수 엘런 쿠퍼는 여행을 하다가 중고품 매장에서 낡은 빨간 모자를 샀다. 친한 친구의 쉰다섯번째 생일이 다가오자 그는 시 <경고>를 떠올리며 늙어가는 친구에게 즐겁게 늙으라는 생각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 빨간 모자를 선물하자 친구뿐 아니라 주변의 여인들까지 감명을 받았다. 그들도 빨간 모자를 쓰고 즐겁게 우정을 지키며 삶의 꿈을 이루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쿠퍼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빨간 모자를 선물했다. 그리고 마침내 1998년 4월25일 자주색 옷을 입고 빨간 모자를 쓴 여성들이 모여 티파티 모임을 가졌다. 그리하여 ‘빨간 모자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7만명이 넘는 회원을 자랑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1.

내란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다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2.

[사설] 윤석열·국힘의 헌재 흔들기 가당치 않다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3.

앞으로도 우린 파쇼와 싸우게 된다 [아침햇발]

트럼프, 멜라니아, 밈코인 [헬로, 크립토] 4.

트럼프, 멜라니아, 밈코인 [헬로, 크립토]

[유레카] 대통령까지 중독된 알고리즘 공화국 5.

[유레카] 대통령까지 중독된 알고리즘 공화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