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자녀들의 상속세 문제를 계기로 보수언론, 경총과 전경련 등 일부 경제단체, 자유한국당이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세율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상속세가 ‘기업가 정신’을 죽여 기업주들이 기업을 팔거나 외국으로 떠나 일자리가 없어지고 국가경제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쓰는 말도 ‘약탈적 상속세’니 ‘징벌적 상속세’니 매우 선동적이다. 한마디로 견강부회고 침소봉대다.
기업가 정신은 새로운 사업이나 시장을 개척하고 기술 개발과 조직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도전 정신이다.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그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상속세를 내지 않고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게 기업가 정신이라니, 어처구니없다.
보수언론은 대부분 익명의 기업인 사례를 전하고 있고, 몇몇 실명으로 거론한 기업의 경우도 복합적인 이유에서 매각됐는데 상속세 탓으로만 몰아간다. 사실 왜곡이다. 또 기업이 팔리면 최대주주가 바뀌는 것일 뿐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얘기가 안 된다.
부모가 기업을 경영하면서 법인세와 소득세를 냈는데 자녀에게 상속세를 물리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주장도 궤변이다. 부모가 낸 세금은 회사를 창업하고 키우는 과정에서 납부한 것이다. 자녀가 상속을 받아 새 재산이 생겼으면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높은 건 사실이다. 최고세율이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벨기에(80%), 프랑스(60%),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최대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해 최대 30%의 할증이 붙어 최고세율이 65%로 높아진다. 또 35개 회원국 중 11개 국가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상속세를 폐지했다. 이 중 스웨덴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자본소득세로 대체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초공제와 인적공제 등 각종 공제가 많아 상속세 실효세율이 뚝 떨어진다. 통계청과 국세청 자료를 보면, 2017년 사망자는 28만6천명이고 배우자와 자녀 등이 상속세를 낸 피상속인은 6986명이다. 2.4%에 불과하다. 이들이 물려준 상속 재산은 총 14조1천억원, 상속세는 2조4천억원이다. 실효세율이 17%다. 상속 재산이 100억원을 넘는 155명으로 좁혀 봐도, 총 상속 재산이 4조3천억원, 상속세는 1조4천억원으로 실효세율이 32.6%다. 각종 공제로 과표가 상속 재산에 비해 대폭 줄어들어 실효세율도 크게 낮아지는 것이다.
재벌 그룹은 더하다.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조양호 회장 지분(17.5%)을 자녀들이 물려받으면 상속세가 2천억원 정도 될 것으로 추산된다. 2천억원을 한꺼번에 다 내야 하는 건 아니다. 상속세가 2천만원을 넘으면 5년에 걸쳐 나눠 내는 ‘연부연납’이 가능하다. 조 회장 자녀들은 5년 동안 매년 400억원의 상속세를 내고 30개 계열사를 둔 연매출 16조5천억원의 한진그룹을 물려받는다.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거대 그룹을 장악하는 한국 재벌의 순환출자 구조 때문이다. 만약 상속세를 내기 위해 조 회장 자녀들이 지분을 매각하면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인 ‘강성부 펀드’와 손을 잡고 경영권을 뺏을 수 있다는 보수언론의 억측은 상속세 폐지 주장을 확산시키려는 ‘공포 마케팅’으로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상속세 폐지 주장의 본질은 세금 없이 부를 대물림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세금을 많이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상속세를 내기 싫으니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게 솔직하다. 기업가 정신이니 일자리 창출이니 거창한 말을 억지로 갖다 붙이면 실없는 얘기로 들릴 뿐이다.
상속세가 어느 수준이면 적정한가는 정답이 없다.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자산 불평등이 심각하다. 특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의 격차가 불평등의 출발선이 된다. 기업성과 평가 사이트인 시이오(CEO)스코어 자료를 보면, 한·미·중·일 4개국의 2017년 기준 부자 상위 200명 중 ‘자수성가형 부자’의 비중이 평균 67%로 상속형(33%)의 2배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 상속형이 62%로 자수성가형(38%)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부의 대물림’을 놔둔 채 상속세를 건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 요즘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혁신 경제’는 요원한 일이 돼버린다.
정말 딱한 것은 민주당이다.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을 연매출 3천억원 미만에서 1조원으로 확대하고 공제 한도도 최대 500억원에서 1천억원으로 늘리자”고 주장한다. 자유한국당은 원래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산·서민층을 대변한다는 정당이 ‘조세 정의’를 강화하기는커녕 ‘부자 감세’를 주장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jsahn@hani.co.kr
안재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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