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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어떤 과거 청산

등록 2019-03-21 17:51수정 2019-03-22 14:21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943년 베를린 교외의 쇠네바이데에는 나치 강제수용소의 노동력을 이용한 공장이 세워졌다. 오늘날 그곳은 ‘나치 강제노동자료센터’가 되어 쓰라린 과거를 더듬는 사회적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그러한 용도 자체의 전환은 놀라운 일이다. 더 놀라운 것은 2004년 베를린 시의회의 제안으로 소박한 기억의 터가 된 그곳이 2015년에 세 건물을 증축하여 청소년의 회합 장소로 거듭난 과정이 바람직한 과거 청산의 한 예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1959년 독일의 자동차 회사 베엠베(BMW)는 파산의 위기에 몰렸다. 이미 200여개의 회사를 소유하고 있던 크반트그룹의 총수 헤르베르트는 금융인들의 조언을 물리치고 재산 손실의 위험을 무릅쓰며 그 회사에 투자하여 그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고급스러운 수제차와 대량생산되는 차를 원하는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브랜드를 개발하여 그는 회사를 살림과 동시에 스스로도 대주주가 되어 갑부의 반열에 올랐다.

2007년 독일의 공영방송에서 <크반트가의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크반트 가문에서 나치와 협력하며 노예처럼 부리던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았던 것을 수많은 청중에게 알린 것이었다. 실제로 헤르베르트의 아버지 귄터는 1차대전 당시부터 독일의 군부와 결탁하여 축재했으며, 나치 치하에서는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배터리 회사를 경영했었다.

크반트 가문의 젊은 상속인들은 의연하게 대처했다. 그들은 성명을 내어 나치 치하 그들 가문의 행적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 연구를 담당했던 역사가 요아힘 숄티제크는 2011년 1200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를 통해 “크반트 가문은 나치의 범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크반트 가문은 거금을 기부하여 ‘강제노동자료센터’가 현재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도왔다. 그 센터의 강 건너편에 선대의 배터리 공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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