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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트럼프의 네오콘화와 핵 협상

등록 2019-03-13 16:49수정 2019-03-14 11:57

트럼프의 네오콘화는 핵 문제에서 '빅딜'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으로 표출되고 있다. 북한 변수 이상으로 미국 변수의 비중이 커져 길이 더 험해지고 있다. 끈질기게 북-미 사이 접점을 찾되, 미국이 충분한 협상 의지와 역량을 보여주지 않을 경우의 대안도 생각해야 한다.
김지석
대기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뒤 미국 정부 고위 인사들의 대북 강경 발언이 이어진다. 대화를 하겠다지만 사실상 북한의 항복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또한 남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전면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힌 미국은 2021년으로 만기가 다가온 새 전략무기감축협정(뉴 스타트)의 연장에도 부정적이다. 미국의 이런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뒤 2년여 동안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국제질서 재편을 꾀해왔다. 미국의 단기이익을 가장 앞세우는 경제 국수주의가 그 한가운데 있다. 그는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해 2015년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정과 이란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으며, 중국을 비롯한 지구촌의 거의 모든 주요국과 무역전쟁을 벌인다. 그는 역시 미국 주도로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벗어난 보복관세도 서슴지 않는다. 오랜 동맹국과의 관계에서도 자국의 경제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군사비 지출 증대 압박 등이 주요 이슈가 된다.

최근 움직임은 여기에다 네오콘(신보수주의 또는 신보수주의자)이 대외정책의 또 다른 축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증거까지 조작해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네오콘은 상대의 굴복을 통한 패권 확대를 지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이익을 중시해 해외 군사력 사용을 꺼리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우선주의와 네오콘은 미국 중심 사고와 일방 행동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친화성이 있다. 네오콘을 대표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목소리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미국우선주의에는 실용주의와 근본주의가 섞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질 성과를 중시하면서도 자신의 지지 기반인 백인 중하층의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에선 막무가내 행태를 보인다. 반면 네오콘 인사들은 선악 개념에 충실한 근본주의자들로, 거친 만큼이나 정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네오콘 쪽으로 기우는 것은 실용주의보다 강경 외교가 내년 대선을 앞둔 자신의 정치 입지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외정책에서 전략적 사고가 부족한 것으로 비판받아온 그가 네오콘을 활용해 보수세력을 끌어당기려는 측면도 있다.

트럼프의 네오콘화는 북한 핵 문제의 단계적 해결을 거부하고 일괄타결(빅딜)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으로 표출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동시·병행 조처를 얘기했던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이제 말을 바꿔 ‘전면적이고 완전한 해법’(토털 솔루션)을 앞세운다. 표변이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다. 비건 대표나 볼턴 보좌관이 이전 정권의 협상 실패를 강조하며 강경 입장을 합리화하려는 것 또한 무책임하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이제까지 그랬듯이 끈질기게 북-미 사이 접점을 찾아야 한다. 특사 파견과 정상회담 등을 통해 실행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협상 동력을 유지·확대해야 한다. 미국이 말하는 빅딜이 비핵화-평화체제 전체 과정에 대한 로드맵에 합의하는 것을 뜻한다면 진지한 협상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 때까지 제재 완화를 비롯해 아무런 행동에 나서지 않겠다면 협상은 성립되기 어렵다. 어느 경우에나 실제 행동은 단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미국도 인정하듯이 비핵화는 긴 과정이다.

북-미 협상 진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중국과 손잡고 비핵화 협상을 시도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미국과 북한이 협상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할 일도 아니다. 실질적 대북 제재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을 통해 이뤄진다. 평화체제 구축도 일차적으로 동북아 나라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문제는 북한이 중국과 한국을 비핵화 협상 상대로 인정할지 여부인데, 두 나라가 대북 제재 관련 결정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가진다면 북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장 나은 해법은 미국과 북한이 한 발짝씩 물러나 타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북한 변수 이상으로 미국 변수의 비중이 커지고 있어 길이 더 험해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50%를 더 내야 한다는 상식 밖의 말까지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미국이 충분한 협상 의지와 역량을 보여주지 않을 경우의 대안도 생각해야 한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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