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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미세먼지 ‘대란'을 견디는 법 / 김창엽

등록 2019-03-06 17:56수정 2019-03-06 19:05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연구소 소장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비상조치’를 강조해봐야 언 발에 오줌 누기 아닐까 싶다. 뭐라도 해야 하는 사정이 오죽할까만 온갖 대책이란 것이 궁여지책을 벗어나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공기청정기에서 눈을 돌려 뿌연 하늘을 한번 보시라.

‘불청객’이었던 미세먼지는 ‘대란’으로 번질 조짐이다. 그새 뭘 했는지 따지다 보면 ‘스캔들’이 되지나 않을까. “관측 사상 최고치”에 “수도권 사상 최장 연속 비상조치”라니 들이닥칠 며칠이 더 아슬아슬하다. 처음인 양 허둥거리는 정부도 미덥지 않지만, 애쓴다고 다 할 수도 없으니 못내 답답하다.

나 같은 사람까지 나서야 하나 걱정이다. 보건과 정책을 공부한다고 하나, 미세먼지가 전문은 아니니 어떤 마스크가 좋다고 처방할 처지는 아니다. 화력발전이 어떻고 경유차가 어떠니 말할 기술 능력도 없다. 솔직히 중국발이 더 많은지 국내 원인이 주범인지도 볼 때마다 헛갈린다.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대책들이 큰 소용이 없으리라는 예상, 그리고 길게 같이 해결하자고 시민을 설득하는 정치적 실천이 대안이라는 주장.

모르는 척 특별 처방을 내놓으라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당장 효과를 보기 어려운 이유라는 것들이 그렇게 생겼다. 아직 정확한 현황과 원인도 잘 모른다, 워낙 여러 군데서 미세먼지가 생긴다, 배출원을 알아도 줄일 방법이 마땅치 않거나 영 오래 걸린다, 중국 쪽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하나도 만만한 것이 없으니 이대로는 백가쟁명이 다 공허하다.

“정부는 어디 있나”를 책망하는 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정작 이런 것이 아닐까? 내년이 올해보다 낫게, 자식과 다음 세대는 피해를 덜 보리라 기대할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달라.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오래 끈질기게 작동하는 것. 고통을 견디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희망의 정치가 할 몫이다.

미래를 안심하려면 비전에 다가가리라는 믿음도 중요하다. 특히 앞에서 끌어야 할 정치에 대한 신뢰!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묵은 불신의 벽을 넘기가 쉬울까만, 끝내 한라산까지 덮쳤으니 어쩌면 역설적 기회다.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 미룬 법과 정책부터 해결하면 작은 실마리라도 잡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미세먼지를 해결하겠다는 진지한 동기와 불굴의 의지가 있는지가 남았다. 이를 확신하기 어려운 데는 원인 제공자, 피해 당사자, 수습 책임자가 분명하지 않은 이유가 크다. 당국은 원인과 책임자를 특정할 수 있어야 뭐라도 할 일이 있지만, 그들은 여럿인데다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른다. 무엇을 잘못했고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지도 대강만 알 뿐이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당사자도 모래처럼 흩어져 있다. 여러 화력발전과 수많은 디젤차가 함께 미세먼지를 뿜는 형편이면, 게다가 예방 기술과 수단까지 마땅치 않으면 책임 추궁과 압력은 초점이 흐리고 힘도 약할 수밖에 없다. 국가도 남을 탓하거나 내 할 책임은 다했다며 미루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정치적 책임의 분산, 희석, 무력화.

할 수 없다. 나쁜 조건을 돌파하는 일부터 정치가 책임을 다해야 할 고유 의무다. 먼저 누가 어떤 고통을 받는지 예민하고 아프게 포착해야 방향이 잡힌다. 어린이, 노인, 만성질환자, 임산부, 빈곤계층. 목소리가 낮고 소셜미디어도 모르는 이들의 처지가 더 중요하다.

정치는 우선 흩어진 대책들을 하나로 꿰고 법과 더불어 돈과 사람을 마련하라. 그리고 공동체의 역량을 모두 모아 믿을 만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라. 그 많던 ‘로드맵’은? 당장 어렵다면 언제까지 내놓겠다는 약속이라도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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