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자 2월 말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회의론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지난해부터 시작된 한반도·동북아 역사의 새 물결을 강화할 것은 분명하다. 그 한가운데에는 당연히 비핵화가 있다. 비핵화의 근본 조건과 관련한 세 가지 질문이 있다. 하나는 ‘북한이 정말 핵 포기를 결심했는가?’이고, ‘미국은 인내와 정치력이 요구되는 핵 협상을 완수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다음이다. 마지막은 한국의 주도력·창의성·책임에 대한 것이다. ‘한국은 예상되는 모든 변화와 갈등에 잘 대처하고 충분한 부담을 질 수 있는가?’ 첫 질문의 답은 ‘그렇다. 하지만 대가가 필요하다’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고 일관되게 경제 우선 노선을 추구하는 것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 북한이 쉽게 핵무기·핵물질·핵시설·핵능력을 모두 제거하리라고 믿을 수는 없지만, ‘핵 없는 나라 발전’을 꾀하는 모습은 분명하다. 다음 질문의 답은 ‘대체로 그렇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이전 어느 대통령보다 강하다. 이제 비핵화 협상의 복잡한 성격도 잘 이해하고 있다. 미국의 협상 능력은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서면서 협상에 탄력이 붙고 있다. 그의 협상 역량은 예상을 웃돈다. 마지막 질문의 답은 ‘그렇다. 하지만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중재자·운전자 역할을 잘해왔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있었기에 1·2차 북-미 정상회담도 열리게 됐다. 우리나라가 해야 할 몫은 앞으로 더 커진다.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의 판단력과 의지, 정치력이 있어야 급변하는 상황에서 중심을 잡고 지속해서 동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종합하면, 핵 문제가 불거진 1993년 이후 비핵화 가능성이 가장 큰 때가 지금이다. 물론 비핵화-평화체제 협상 과정이 쉬울 수는 없지만, 현실에 눈을 감거나 정치적 의도를 앞세우는 이들만이 여전히 협상무용론을 주장한다. 협상의 끝에서 흔들 깃발은 정해져 있다.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듯이 완전한 비핵화, 새로운 관계(북-미 수교),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그것이다. 대북 제재는 비핵화 수준에 맞춰 새로운 관계의 한 부분으로 해제 또는 크게 완화될 것이다. 목표가 분명하고 근본 조건이 갖춰져 있는데 왜 힘있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가? 판이 바뀌었음에도 예전부터 내려온 의심이 생각과 행동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상대가 먼저 멀리까지 가는 것을 확인하고 뒤따라가겠다’는 게 실패한 과거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통 크게 합의하고 서로 검증하자’는 태도를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비건 대표는 이달 초 대북 협상에서 1차 정상회담 합의를 바탕으로 12개가 넘는 의제를 논의했다고 했다. 나올 얘기가 다 나왔으니 ‘단계적 상응조처’라는 원칙에 충실하다면 이전에도 여러 차례 해본 로드맵(일정표·청사진) 작성이 그렇게 어려울 리 없다.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로드맵에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몇몇 조처를 추가하면 이번 정상회담은 큰 성공이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해체 이상의 추가 약속을 하고, 미국은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과 종전선언에 더해 대북 제재를 일부 완화해 ‘핵 포기-경제 우선 노선’의 유효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비핵화의 근본 조건은 무한정 유지되지 않는다. 내년 말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국내 반대세력의 공격이 거세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김정은 위원장 또한 1차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인 내년까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 곧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의 시한은 내년 초 정도다. 역산해보면, 이번 회담에서 합의한 로드맵을 바탕으로 1년 안에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 회담에서 로드맵을 작성할 실무팀을 만드는 데 그친다면 시간은 더 빡빡하다. 이마저도 잘 안될 경우 새로운 냉전의 도래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핵화 기회는 다시 몇해 뒤로 미뤄질 수 있다. 새 물결의 물꼬는 텄으나 큰 강에 합류하지 못한 채 물길을 찾는 게 지금 상황이다. 물은 언젠가 바다까지 가겠지만 빨리 탄탄한 흐름이 되도록 하는 게 모두의 과제다. 이 일을 잘할수록 우리에게 돌아올 혜택과 지구촌의 평화·번영에 기여할 가능성도 커진다. 지금보다 더 나은 비핵화 기회는 없다.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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