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연쇄 강간의 용의자였던 앨버트 데살보가 연쇄살인의 범인으로 강력하게 부각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구치소의 다른 수감자 조지 나사르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은 일이었다. 나사르는 곧 자신의 변호사 리 베일리에게 알렸고, 베일리는 데살보의 변호까지 맡기로 했다. 베일리는 데살보의 자백에 일관성이 없고 결정적인 물증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친 절도와 성범죄 행각에 서로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감옥이 아닌 정신병동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감옥에서의 종신형을 선고했고, 베일리는 앞으로 비슷한 종류의 범죄자에 대해 연구하여 범죄를 줄일 방편이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재수감 이후 경계가 가장 강한 감옥에 수감되었던 그는 연쇄살인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수감된 지 6년 만인 1973년 그는 살해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용의자였던 로버트 윌슨에 대한 재판은 배심원단이 합의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채 종결되었다. 윌슨에 따르면 데살보는 마약 조직에서 정해놓은 가격보다 낮게 마약을 팔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2013년 보스턴 경찰은 데살보의 관 뚜껑을 다시 열어 유해에서 추출한 디엔에이가 강간 살해된 19살의 메리 설리번에게서 발견된 것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그렇지만 그 연쇄살인의 일부가 다른 범죄자들의 소행일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19살에서 85살에 이르는 피해자들 사이에서 프로파일링이 가능한 어떤 연관성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1971년 텍사스주 의회에서는 “인구 조절”을 위한 데살보의 노력을 기리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것은 만우절의 장난이었는데, 제안했던 하원의원 톰 무어는 숙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입안하는 동료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고 밝힌 뒤 그 법안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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